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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갈래 미로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먼저 뒤에 실린 일러스트레이터 '와다 마코토'의 해설이야기를 하고 싶다. 난 책을 읽을 때, 해설, 저자의 말 따위를 먼저 읽는다. 읽기 전 접한 저것과, 읽고 난 후 접한 저것의 미묘한 차이를 사랑한다. 사실, 플라시보 시리즈 1권에 실린 해설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나치게 사변적이라 호시 신이치를 제대로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와다 마코토의 해설은 다르다. 호시 신이치와 함께 작업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살아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러 차례 반복해 읽었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다.
해설만으로도 페이지 전체를 채울 수 있지만, 딱 한 가지만 살펴보고 가자. 와다 마코토는 처음 만나는 호시 신이치에게 뜬금없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쇼트-쇼트를 쓰는 비결은 뭔가요?" 호시 신이치는 말한다. "프랑스 콩트든 에도 시대의 만담이든 뭔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을 테죠? 혹은 주간지에 나오는 콩트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도 좋아요. 기억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지는 법이죠. 그걸 얘기해 주세요. 아마 처음에는 좀처럼 남을 웃길 수 없을 거에요.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의 타이밍도 좋지 않고, 서둘러서 결론을 이야기해 버리지요. 그렇기 때문에 재미없게 느껴지는 겁니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세 번 반복하는 와중에 이야기하는 타이밍을 알게 되지요. 결국 상대를 웃길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비결입니다."라고. 와다 마코토는 감명 받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작가의 같은 시리즈를 비교한다는 것이 조금 우습지만 1권보다 2권이 좋았다. 1권이 100점 만점이라면, 2권은 100점 만점 플러스알파 정도. 취향에 맞는 작품이 더 많았다. 특히 정통 '쇼트-쇼트'보다는 약간 긴 작품들이 마음에 들었다. 중단편이나 장편 같은 긴 호흡에 익숙해 졌기 때문일까?
초반부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공포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숲속의 집](p.25)이다. 도둑질을 하고 적막한 숲속으로 도망친 도둑, 경찰은 따돌렸지만 허기와 피로만은 피할 수 없다. 간신히 집 한 채를 발견하고는 다가간다. 적적히 집을 지키고 있는 노인. 도둑과 노인에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설정부터 으스스하지 않은가? 왠지 옛날이야기를 연상시키는 듯 한 설정, 그러나 결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과도기의 혼란](p.54)과 [얼굴](p.70)은 미래과학과 세계에 대한 호시 신이치의 예언과 같은 작품이다. 지금 당장은 꿈같은 이야기지만 머지않아 현실화 될 수도 있는 그런 것. [과도기의 혼란]은 길거리에서 사탕을 파는 로봇이 출몰하면서 벌어지는 사회 혼란상을 그리고 있다. 판매금지구역에서 판매하는 로봇을 제재해야 할 지, 로봇판매행위에 대해 세금부과가 가능할 지, 로봇에게 선거권을 인정해야 할 지, 등등. [얼굴]은 페이스 오프와 유사한 설정으로, 평범한 삶에 염증을 느낀 남자의 무모한 도전(?)을 그리고 있다. 분명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왜 그토록 실감 나는지 의아했던, 약간은 오싹했던 이야기.
[출구](p.134)도 멋진 작품이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방송국 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는 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출구를 찾으려야 찾을 수 없던 것. 왜 저리 되었는지 아무도 모르고, 사람들은 호기심에 앞 다투어 방송국으로 달려간다. 포화상태가 된 방송국 안에선 갖가지 일이 벌어지는데…읽어 보시길^^ [행복한 공주](p.196)도 주목할 만하다. 동화속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공주 때문에 벌어지는 에피소드인데, 호시 신이치 작품치고는 약간 길다. 그만큼 가치가 있다. 동화에 대한 패러디, 비틀기. 1권의 '미래의 이솝우화'와는 다른 차원에서 흥미로웠다.
플라시보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을 읽었다. 역시 호시 신이치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무려 1000편 이상을 완성한 거장의 저력을 새삼 확인했다. 행복하다. 앞으로 수십 권의 책, 수백편의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