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타임
사토 다카코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사토 다카코의 데뷔작 <서머타임>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작품이다. 사토 다카토의 섬세한 감성과 유려한 문체, 작품을 지배하는 계절이미지와 피아노선율, 그리고 깔끔한 양장과 삽화까지. 좋은 책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이 작품은 가지고 있다. 삽화 얘기를 더 해보자. 표지를 넘기면 파스텔톤 삽화가 4장에 걸쳐 실려있다. 처음엔 아름답고 환상적이기까지 한 그림을 보며 마냥 황홀해 했다. 그러나 깊은 의미가 있었다. 그림은 4개의 챕터를 형상화한 것이다. 읽은 후 다시 그림을 보면, 그림에 담긴 의미를 깊게 이해할 수 있다.

<서머타임>은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주목할 것은, 챕터마다 화자와 계절이 바뀐다는 것이다. [서머타임]의 화자는 이야마 슌, 계절은 8월즈음, [5월의 꽃길]의 화자는 슌의 누나인 이야마 가나, 계절은 5월, [9월의 비]의 화자는 이사오 고이치, 계절은 9월, [화이트 피아노]의 화자는 다시 가나, 계절은 12월이다. 이처럼 계절별로 구성된 이야기는 여러모로 효과적이다. 사계의 특유한 계절이미지를 형상화 할 수 있는데다, 계절의 흐름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성장을 극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성은 요시다 슈이치의 <캐러멜 팝콘>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세 소년소녀-슌, 가나, 고이치-의 우정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만나고, 상처받고, 사랑하면서 조금씩 성장한다. 아직 세파에 찌들지 않은 관계, 그 순수함은 참으로 아름답다. 특히 고이치란 인물에 주목했다. 고이치는 교통사고(p.95)로 아버지와 자신의 왼팔을 잃은 소년이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고이치는 한쪽 팔만으로 수영을 하고, 피아노를 치며, 당당히 꿈을 키워간다. 생각해 보자. 사고로 한쪽 팔을 잃게 된다면,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당당하게 미래를 꿈꿀 자신이 있는가? 또한 한쪽 팔이 없는 고이치와 함께하는 슌과 가나남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아름답다. 이들이 함께하는 장면을 보면 고이치가 외팔이란 걸 의식할 수 없을 정도다. 그 어떤 편견과 차별도 이들에겐 문제되지 않았던 것이다.

고이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저것 뿐이 아니다. 바로 어머니의 남자친구와의 관계설정. 아버지가 죽고 얼마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기 시작한다. 고이치는 이렇게 말한다. '당시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화도 나고 속으로는 무척 겁도 났다. 또 다른 불행이 찾아올까 두려웠다. 아빠를 잃어버렸는데 엄마까지 내 손이 닿지 못하는 곳으로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까?'(p.97)라고. 고이치는 성장하고, 엄마의 남자친구 역시 계속 바뀐다. 엄마의 새로운 남자친구 다네다와의 관계양상(p.104이하)은 고이치의 갈등과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극적인 소재다, 자세한 건 읽어 보시길.

[5월의 꽃길]은 소녀의 순수한 감성을 제대로 그려냈다. 꽃에 감동하고, 꽃과 함께하는 소녀의 모습(p.73이하), 남동생과 다투고 엄마가 남동생을 편들어 준다고 뽀루퉁해진 누나의 모습(p.81), 잘못한 동생이 사과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발견하고 피식 웃어버리는 모습(p.86)등등. 어렸을 때 누나와 내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누나의 생각은 떠올릴 길이 없지만. 아무튼 저부분은 여성작가가 아니면 감히 쓸 수조차 없는 내용이다. 저토록 순수하게, 저토록 아름답게 말이다.

<서머타임>은 이 여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다. 시원한 여름이미지, 감미롭고 셈세한 필치, 적당한 분량까지,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해야 한다면 아무 고민없이 이 책을 고르겠다. 모든 것을 떠나, 사토 다카코의 데뷔작이란 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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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7-22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만 봐서는 아름다운 그림같은데 왠지 리뷰를 읽고 나니 슬퍼지네요...

쥬베이 2008-07-22 07:55   좋아요 0 | URL
그쵸, 팔과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라니...
그래도 전체적인 느낌은 아름답고, 희망이 넘쳐요^^
기대이상의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