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카니발
안 소피 브라슴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절판


턱이 합죽하니 작은 데 비해 잇몸은 지나치게 컸다. 입술이 얄팍한 데 비해 이는 지나치게 크고 엉성했다. 당연히 앞니는 입 밖으로 삐져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그녀의 입은 언제나 헤벌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늘 실실거리고 웃는 듯 했다. 얼굴 한복판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 입만 빼면 꽤 이쁘장한 얼굴이었다. 코도 오똑했고 눈썹도 가지런하고 숱이 많았다. 하지만 그 입 때문에 다른 부분마저도 덩달아 추해 보였다. 눈빛까지도. 그러고 보면 마리카의 얼굴은 부조리의 극치였다. 이목구비가 조각조각 엇나가게 끼워맞춰진 것처럼.-14쪽

지하철이 급커브를 틀 때 그들의 팔꿈치가 내 몸에 닿기라도 하면, 그러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고 나서 지하철에서 내린 후에는 잰걸음으로 걸어나갔다. 웬 남자가 나를 따라오고 있을 거라 상상하면서. 나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만의 환상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26쪽

아름다움이란 스스로를 의식하는 순간부터, 관능적으로 변하는 순간부터 끔찍한 것이 되게 마련이다.-36쪽

지하철 안에서 나는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한동안 뚫어져라 노려보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게 네 얼굴이야, 마리카.'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못생겼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듯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 나면 한참이 지나서야 내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내 얼굴의 일부분들로, 한결같이 내 얼굴의 구성해왔던 것들로 바라볼 수 있었다.-64쪽

나는 내 추한 몰골을 사랑했다. 그것을 증오하는 만큼이나. 이따금 나는 벌거벗은 채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여자를 비웃었다. 시시덕거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벌거벗은 몸뚱이를, 볼썽사납게 얼굴을 일그러뜨린채 흐느끼는 여자를 비웃었다.-66,67쪽

나는 내 몸을 끔찍이 싫어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그걸 감춰 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내 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냄새가 그렇게 싫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바닐라 향이며 갖은 향수로 그 냄새를 가리고 숨겼다. 한 시간씩 샤워를 하며 몸을 박박 문질렀다. 살갗이 다 벗겨져나갈 정도로. 나는 내 몸이 존재한다는 걸 잊어버리기 위해 그렇게 몸을 망가뜨렸다.-80쪽

그녀가 아무리 연극을 해도 소용없었다. 내게서 아무것도 못 느끼는 척, 나를 아랑곳하지 않는 척해도 그녀는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 한심한 바보 마리카는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 제 애인이 되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그 누구에게서도 받을 수 없었던 바로 그 선물에 혹해 마리카는 내게 매달렸다.-130쪽

우리는 딱했다. 왜냐, 마리카가 나를 사랑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내 삶이나 내 성격 같은 것 따위에 그녀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녀에게 나는 하나의 살덩어리이자 살가죽에 불과했다. 그녀가 그토록 섹스에 집착하는 건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 몸 밑에 깔려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하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를 통해서 제 자신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나르시시즘을 충족시켜주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건 못생긴 여자에 사로잡힌 남자라면 누구나 감수해야 하는 운명이었다.-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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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6-24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상자의 글이 이 작품에서 두 남녀의 사랑의 향방을 보여주는듯 하네요...

쥬베이 2008-06-24 16:02   좋아요 0 | URL
와 칼리님은 짧은 문장만으로도 이야기전체를 꽤뚫어 보시네요^^
두남녀의 '이상한' 사랑이야기, 예술적 향취가 대단한 작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