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장난
전아리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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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장난>은 올해 읽은, 아니 태어나서 지금까지 읽은 소설집중 최고다. 수록된 10편의 단편 모두 흥미롭고 문학적 향취까지 뿜어낸다. 놀라운 일이다. 86년생 어린작가의, 그것도 첫 소설집이 이렇게 완벽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하나 놀라운 것은 작가가 선보이는 작품세계가 깊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남편과 헤어지고 힘겨운 삶을 사는 중년여성(메리 크리스마스), 트랜스젠더를 등장인물로 다큐멘터리 제작하는 대학생(내 이름 말이야), 서커스단을 전전하는 난장이(외발 자전거), 괴팍한 스님 밑에서 행자승노릇하는 젊은이(깊고 달콤한 졸음을)등등. 다양한 소재, 등장인물을 맛깔지게 그러낸다. '어떻게 이런 내용을 쓸 수 있을까? 이런 심리묘사는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걸까?' 감탄할 따름이다.

[메리 크리스마스](p.29이하) 떠나버린 남편, 주인공은 전셋방에서 딸(유리)과 단둘이 살아간다. 남겨진 두모녀의 끈끈한 사랑, 깊은 애정을 떠올렸는가? 아니다. 주인공에게 딸은 화풀이 대상일 뿐이다. "내가 눈치 보면서 밥 먹지 말랬지? 왜 병신처럼 그렇게 눈치를 보면서 밥을 먹어? (중략) 엄마 말이 말 같지 않아? 꼭 맞아야 사람 말을 들어?"(p.33) 딸아이의 피를 보고서야 진정하는 주인공…. 아파트 단지를 돌며 책을 팔고, 보험영업을 하는 주인공에게 삶은 전쟁이었다. 보험을 대가로 노골적인 요구하는 사람들, 아파트 관리인의 성화, 집주인 여자의 독촉, 딸아이를 향한 무한한 사랑은 애당초 무리한 요구인지 모른다.

여고동창 '명희'가 등장한다.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 남편은 둔 명희는 화려하고 안정된, 주인공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부러움 섞인 주인공의 생각, '명희의 삶에는 갓 지은 쌀밥의 따뜻한 온기와 반드르르한 윤기가 돈다'(p.32) 이어 주인공은 보험때문에 명희남편을 찾아가고 어색한 이야기를 나눈다. 부러워 했던, 그렇게 화려해 보였던 명희의 삶 이면의 씁쓸함, 그렇다. 뭐든 소유하지 못한 것이 크고 대단해 보일 뿐이다. 막상 가지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선물을 내미는 유리의 모습(p.55)에서 두 모녀의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참 마음이 찡해지는 마무리다.

한가지 주목한게 있다. 바로 '까마귀'의 상징성이다. 딸아이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다음에 등장하는 까마귀(p.38), 잔잔한 결말이전에 등장하는 목 졸려 죽은 까마귀(p.54)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의 장편 <시계탑>에서도 주인공 연이들 둘러싼 까마귀 상징이 등장한다. 과연 전아리 작가에게 까마귀는 어떤 의미일까?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깊고 달콤한 졸음을](p.151이하) 남의 집 일하며 힘들게 번 돈을 사기당한 어머니, 집을 나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여동생 경선, 도선이 열아홉 나이로 절에 들어 온 것은 저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스님이 되는 것은 만만하지 않았다. 혹독하다 못해 괴팍하기까지 한 큰스님의 타박은 도선을 힘들게 한다. 저것도 수련인걸까?

절에 먹을거리를 들고 오거나, 빨래를 해주는 긍골노파는 이야기에 활력소 역할을 한다. 긍골노파가 꺼낸 앨범속 사진(p.170)은 큰스님과 긍골노파의 뭔가 말할 수 없는 관계를 나타낸다. 노파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느끼는 도선. 한편, 큰스님에게 단주를 훔쳤다는 오해를 받게 된 도선은 절을 떠나기로 하는데. 과연 도선은 어떤 깨달음을 얻을까?

단 두편의 단편을 소개하지만, 저 단편이 특별히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다. 누누이 말했지만, 모든 작품의 완성도가 탄탄하고 훌륭하다. 책 가격이 아깝지 않다. 음…'즐거운 장난'이란 제목을 한번 생각해 보자. '즐거운 장난'은 수록 단편의 제목중 하나가 아니다. 저자에게 글쓰기가 하나의 '장난', 그것도 '즐거운' 장난이란 의미일까? <즐거운 장난>, 절대 후회하지 않을 멋진 소설집이다. 문학천재 전아리 작가의 매력을 직접 확인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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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6-16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작가의 나이를 감안하면 책의 주제가 굉장한 설정이네요. 쥬베이님이 최고의 소설집이라 할만하네요...

쥬베이 2008-06-16 18:15   좋아요 0 | URL
<즐거운 장난> 강력 추천입니다!!^^
칼리님께서도 분명 좋아하실거에요. 어린 작가인데 어쩜 이리 잘쓰는지...
정말 놀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