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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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는 이메일로만 구성된 소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에미 로트너'와 '레오 라이케'가 주고 받는 이메일만 이어진다. 이 점에서 아멜리 노통브의 <시간의 옷>과 유사하고, 이메일이란 사이버세계를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국내 한 영화를 떠오르게도 한다.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이런 시도를 총평한다면 A-내지 B+정도가 적당할 듯 하다. 분명 인상적이었지만, <시간의 옷>을 읽고 느꼈던 충격정도는 아니었다.

말이 나온김에 두 작품을 비교해 보자. <시간의 옷>은 1995년을 살던 아멜리 노통브(소설속 인물과 저자의 이름이 같다.)와 2580년을 사는 셀시우스의 불꽃튀는 논쟁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난 이 작품을 통해 아멜리 노통브의 팬이 됐다. 두 작품을 견주어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의 중량감이 떨어진다면, 그건 '이메일과 대화'의 본질적인 차이 때문이다. 즉, 대화는 당사자 사이에서 바로바로 오가는 반면, 이메일은 시차가 불가피하다. 이런 시차는 작품속에서 '5시간 뒤', '다음 날', '5분 뒤'로 제시되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또한 분량면에서도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의 옷>이 유리하다. 이런 독특한 구성은 쓰는 입장에서나 읽는 입장에서나 녹녹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미 로트너'는 잡지의 정기구독을 취소하기 위해 이메일을 보내지만, 에미가 사용한 메일주소는 '레오 라이케'의 것이었다. i앞에 e를 끼워넣는 습관때문에 메일주소를 잘못 쓴 것이다. 누가 알았던가? 이것이 운명적 만남의 시작임을. 이들은 계속해서 메일을 주고 받고 서로의 감정을 키워간다. 잘못건 전화가 인연이 된 연인처럼 영화같은 설정. (위에도 말했지만, 국내 한 영화가 떠오르지 않는가? '접속'이었던가?)

이들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접하는 건 이메일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상대에 대해 모르듯 독자역시 모른다. 조금씩 정보가 드러나고 레오는 언어심리학 조교수이자 커뮤니케이션 카운슬러임이, 에미는 신발치수 37의 기혼여성임(p.43)이 밝혀진다. 사이버공간에서 메일을 통해 이뤄지는 관계…인터넷 강국 한국의 독자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며, 현실과 허구사이에서 괴로워 하기도 한다.

이렇게 알 듯 모를 듯한 관계는 1년 이상 지속되고, 이들에게 이메일은 비밀스런 둘만의 소통수단이 된다. 하지만 위기상황도 닥친다. 언어심리학자이자 이메일을 연구하고 있는 레오의 진정성을 에미가 의심한 것이다. "레오, 저를 단지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는 건가요? 감정 전달자로서의 저를 테스트하는 거예요? 당신한테 나는 오싹한 박사논문이나 끔찍한 언어연구의 내용밖에 안 되는 거에요?"(p.167) 레오의 부재와 겹처져 에미의 메일을 레오가 무시하는 듯한 상황이 연출되고, 위기는 절정에 다다른다.

이쯤에서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극적인 결말을 예상해 버린 것이다. 사실, 이들이 아주 친밀한 관계가 아닐까 하는 것. 오래 채팅을 주고 받던 상대가 알고보니 부부였다는 해외토픽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들의 정체역시 의문 투성이다. 독자가 알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들이 상대에게 밝힌 것, 그것 뿐이다. 사이버공간에서 이뤄지는 관계를 고려할 때 이들이 진실을 말했으리란 보장이 없는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에미가 사실은 70먹은 할머니일지? 그렇지 않을가?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노파심으로 덧붙이자면, 내가 한 예상은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다.)

에미와 레오는 서로에 원하고 있다. 잠깐 등장하는 갈등과 위기상황은 일시적인 것이었다.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고,(p.296) 마침내 서로의 목소리를 확인한다. 가상공간에서 현실로 한걸음 전진한 이들. 남은 건 만남, 오직 만남뿐이다. 서서히 결말을 향해 치닫는 상황. 여기서 중요한 인물이 등장(p.310)한다. 바로 베른하르트 로트너. 그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그는 아주 이상한 부탁을 하는데, 결국 레오는 에미와의 관계를 정리하기로 결심한다.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결말,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결말은 실망이다. '결말'이란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뒷정리를 하다 대충 관둬 버렸다는 느낌이다.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열어둔 것 아냐?'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저자가 여기저기 풀어둔 짐은 정리해야 한다. 다양한 해석이란, 저자가 정리해 둔 짐을 토대로 하는 것이지 어떻게 정리할까의 문제는 아니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이메일만으로 구성된 독특한 러브스토리다. IT강국 대한민국 독자들에게, 이메일을 매개로 한 애정은 깊은 공감을 준다. 이들의 상황, 심리는 내가 이미 경험했던 것이다. 때문에 독자에 따라 진부함을 느낄수도 있다. 이메일로만 이어지는 구성은 말이 쉽지 정말 어려운 것이다. 다니엘 글라타우어는 이를 해냈다. 마음을 열고 받아 들이자. 새벽 세 시에 불어오는, 조금은 쌀쌀한 바람에 몸을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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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4-28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감각적이고 서정이 가득하네요.^^

쥬베이 2008-04-28 18:16   좋아요 0 | URL
네 제목이 시선을 팍 끌어요. 제목처럼 서정적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