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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오류 - 되짚어볼 세계사의 의혹 혹은 거짓말 50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 지음, 이지영 옮김 / 열음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지금 당장 학생들에게 이 책을 읽혀야 한다. 특히 세계사를 공부하는 고등학생들, 내가 느낀 충격과 당혹스럼을 그들만은 느끼지 않길 바라기에. 이 책을 읽으며 학창시절 배웠던 세계사 지식이 상당수 왜곡되었거나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역사 자체가 승자에 의한 왜곡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또한 이 책 역시 하나의 역사관이라 할 수 있지만) 충분히 헤아려 '진실'로 접근할 수 있다면 기꺼이 다가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역사의 오류>는 '되짚어 본 세계사의 의혹 혹은 거짓말'이란 부제처럼, 왜곡내지 오류가 의심되는 역사적 사건을 돌아보는 책이다. JFK케너디, 루이14세부터 드랴큘라, 마릴린 먼로, 로빈 후드까지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다룬다. 저자가 서양인(독일)이다 보니, 아시아권의 인물과 사건은 이야기되지 않는다. 아쉽다면 아쉽지만 '세계사의 오류'라는 관점에서 이해하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프랑스 혁명, 바스티유 습격은 없었다'(p.199이하)이다. 세계사시간에 배운 바스티유 습격사건은 이렇다. '폭압적인 왕정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이 왕정을 타도하고 갖혀있던 정치범을 구출하기 위해, 왕정을 상징하는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다. 이 사건은 프랑스혁명의 시발점이 된 영웅적이고 위대한 사건이다' 하지만 저자는 바스티유 습격사건이 지금껏 알려진 것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전략) 이(바스티유 습격사건을 말함) 내용이 부정확하다는 게 문제다. 실제로 7월 14일에 벌어진 상황은 대단히 극적이기는 했지만, 영웅적인 행동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p.200) 영웅적 행동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먼저 저자는 바스티유 감옥이 악명높은 정치범 수용소가 아님을 밝힌다. 도리어 이곳은 특혜받은 죄수들이 안락(?)하게 보내던 곳이었다. 시민들과 죄수들과의 연대감도 없었다. 한마디로, '정치범 구출'이란 사유는 얼토당토 않다는 것. 이어 시민들의 행동을 하나씩 언급한다. 시민들은 바스티유 감옥의 대포때문에 몰려 갔으며, 이곳의 책임자인 '드 로네'는 시민의 요구를 상당수 수용한다. ('드 로네'는 이후 벌어지는 사태에서도 유혈충돌을 막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흥분한 시민들은 만족하지 않고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결국, 요새안으로 몰려드는 시민들. 저자는 말한다. '애초에 무력을 쓸 이유조차 없던 일에 얼떨결에 무장하게 된 폭도들이 잔뜩 흥분한 채 바스티유로 몰려갔다.'(p.205)고. 저자가 인용한 '빌헬름 폰 볼초겐'(사건을 목격한 튜링엔 출신 유학생)의 글을 재인용한다.
"바스티유 함락은 확실히 유럽을 들끓게 할 것이다. 이 사건은 프랑스인들의 명예를 드높이고, 그들의 용기를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습격이 단지 대포를 손에 넣기 위해서, 단지 폭력을 휘둘러보기 위해서 이뤄진 일이라는 게 알려진다면, 그리고 죄수들을 해방시키고 감옥을 파괴한다는 계획이 습격 이후에야 떠오를 생각이며 실제 습격동기와 무관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이 사건에 대한 찬사는 싹 사라질 것이다."(p.206)
폭넓게 퍼진 의혹을 다룬,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투탕카멘의 저주, 어이 없이 죽어간 고고학자들?'(p.255이하). 파라오 무덤 발굴과 관련된 인물들이 파라오의 저주 때문에 죽어간다는 것은 꽤 널리 알려진 의혹이다. 일부에선 곰팡이균이 무덤에 남아 있다가 발굴자의 죽음을 야기했다고도 한다. (난 지금까지 이 곰팡이균, 병균설을 진실로 믿어 왔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모든 의혹을 일축한다. 곰팡이균이 그렇게 오래 남아 있을 수도 없고, 오래 접촉해야만 신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파라오의 저주 역시 '황색언론과 초자연현상 애호가들의 호응'(p.260)으로 탄생한 것이라 주장한다. 실제 탐험대의 평균수명은 당시 평균사망연령보다 높았다고 한다. 음...그렇군.
'달 착륙, 할리우드가 연출한 희대의 사기극'(p.317이하)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아직까지 미국인의 20%는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이 사기라고 믿는다. 나 역시 일련의 증거들(달엔 바람이 불지 않는데, 사진 속 미국기는 펄럭인다. 달표면엔 발자국이 생길 수 없다등등)을 보고 사기극이라 확신했었다. 하지만 저자는 사기극이란 주장을 일축한다. 정말 사기극이었다면 수천명에 달하는 NASA 직원들의 입을 막을 수 없었을 것, 국기가 펄럭인 것은 바람때문이 아니라 달의 중력때문이라는 것등. 저자의 주장도 공감할 만하지만 이 부분은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뭐낙 놀랍고, 충격적인 내용이 많아 전부 소개하고 싶은 심정이다. 클레오파트라의 미모에 숨겨진 비밀(p.31이하), '빵대신 케익을 먹으라'는 말을 했다고 알려진 '마리 앙투아네트'의 진실(p.207), 마릴린 몬로 죽음 이면에 숨겨진 음모와 비밀(p.299이하)등등. 마리 앙투아네트는 저런 말을 한적이 없으며 역사의 음모에 철저히 농락당했다는 것, 당신은 세계사 시간에 배웠는가? (약간 흥분-_-) 노파심때문에 덧붙이자면, 물론 저자의 주장이 모두 진실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주장, 하나의 설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상당한 공감이 간다. 저자는 지금껏 우리가 타성적으로 믿어 왔던 것들을 분석하고 재해석하여,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주장을 펼쳐가기 때문에.
<역사의 오류>, 지금껏 당신이 알고 있던 세계사 지식을 뒤짚어 놓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오류과 거짓말에 사로 잡혀 있었는지 일깨워 줄 것이다. 책 가격이 너무 저렴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많은 것을 전해주는 멋진 책이다. <역사의 오류>, 이 책을 읽어라. 당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세계사는 전부 거짓이었다.
* 표지를 보면, 오류의 '류'자 ㄹ이 뒤집혀 있다. 역사의 오류, 거짓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멋진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과감하게 전부다 뒤집어 버리는 것도 좋았을텐데...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