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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침 - 아나운서 유정아의 클래식 에세이
유정아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마주침, 기분 좋은 단어다. 우연히 첫사랑이나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설램이 묻어 있다고나 할까. <마주침>을 읽으며 많은 음악가를 만났다. 클래식에 문외한인 나로선 이름조차 생소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과의 만남은 '마주침'이란 단어처럼 즐겁고 샐랬다. 유정아 아나운서의 품위있고 맛깔스런 글속에서 이들은 살아 숨쉬고 있었다. 이들의 음악은 생동하고 있었다.
<마주침>은 위대한 클래식 음악가들의 삶과 음악을 10페이지 내외로 소개한다. 중간중간 근사한 올컬러 사진이 수록되어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음악가의 얼굴은 어찌나 멋지던지, 예술과 함께한 그들에겐 뭔가 독특한게 있다) '삶과 죽음, 순간과 영원, 희망과 절망' 같은 6개의 주제별로 이야기가 나뉘어 있다. 이런 구성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삶/죽음, 순간/영원, 계승/혁신, 희망/절망, 비범/평범, 사랑/우정 혹은 이별로 구별하여 썼지만, 이 대조적으로 보이는 단어들은 쓰면서 보니 결국엔 반대가 아닌, 서로 스며 있는 비슷한 말이었다. (중략) 책을 시작하면서는 애써 구별하려 했던 것들이 끝에 가서는 과연 구별지을 만한 것인지 회의하게 되었다. (중략) 음악이란, 예술이란, 그렇게 우리의 부질없는 구별들을 지워나가는 데에 그 본질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p.9,10) 멋지다.
설램 가득한 만남에 더 인상적이고 덜 인상적인게 있으랴 싶지만, 아무래도 국내 음악가들에게 더 관심이 갔다. 저자는 자신의 음악프로에 출연한 장영주를 이렇게 묘사한다. '성하의 절정처럼 싱그럽다'(p.97)고. 다음장에 실린 장영주님의 사진(p.99)을 보면 왜 저런 묘사가 가능한지 이해할 수 있다. 매력적인 검은 드레스에, 바이올린, 매력적인 카리스마, 저런게 아름다움이구나 싶다. 저자는 신입 아나운서 시절 만난 9살의 천재바이올리니스트를 기억하고 있었다. 주변의 질투어린 우려가 무색하게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한 그녀를 보며 저자는 어떤 감회를 느꼈을까? 불현듯 장영주님이 재해석한 비발디의 '사계'가 듣고 싶어진다.
이야기 끝에 해당 음악가의 앨범이 소개된다. 클래식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같은 독자에게 아주 유용한 부분이다. 말이 나온김에, 책 말미에 '유정아의 베스트 클래식 20'(p.383) 역시 인상적이었다. '유정아 아나운서님이 즐겨듣는 클래식이 이거구나'란 생각(^^)과 함께, '듣고 싶다.'란 생각과 함께.
아코디언(손풍금) 음악가 리남신님 이야기(p.225)도 나온다. 리남신님은 세계유수의 아코디언 콩쿠르에서 수상한 능력있는 음악가로, 유명한 클래식이나 북한의 명곡을 손풍금으로 연주했다고 한다. 왠지 어울릴거 같지 않은 클래식과 손풍금을 어떻게 조화시켰는지 정말 궁금하다. (북한곡이라 들으면 안되는 건지 몰라)
<마주침>을 읽으며 수많은 음악가를 만났고,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이미 밝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만남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바로, 저자 유정아님과의 만남이다. 신기하게도 TV화면에서 직접 얼굴을 보던 것보다, 글로 접하는 유정아님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글에 담긴 마음때문일까? 유정아님이 들려주는 음악가들의 삶과 음악은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클래식 음악을 찾아 듣고,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마주침>, 부드러운 클래식 선율처럼 멋진 책이다. 클래식이란 말에 주눅부터 들었던 날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 주었다.
* 다른 음악가들 이야기를 엮은 <마주침2> 기대 하겠습니다.
* 초판한정, 클래식 명곡 CD 정말 근사하다. 이런 멋진 책에 CD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