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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등 이펙트 - 지금 누군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
로빈 스턴 지음, 신준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학창시절 난 아무도 믿지 않았으며, 모두를 증오했다. 어설픈 증오를 품은 바보같은 고슴도치, 그게 바로 나였다. 시간이 흐르고,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허전함을 느낀다. 그때 난 왜 그랬을까? 무엇이 그토록 힘겨웠을까? 마음을 할퀴고 간 생채기는 시간처럼 마냥 흘러가진 않았다.
<가스등 이펙트>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머리속이 텅빈듯 어지럽고,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난 가스등 이펙트의 가해자(gaslighter)이자, 피해자(gaslightee)였다. 그간 이해하지 못했던 아픔의 원인을 우연히 접한 책에서 찾게 되다니…내가 느낀 충격과 아쉬움을 그 누가 알까? 이 책을 당시에 접했더라면 뭔가 달랐을 것이다. 나만이 그런 고통을 받는게 아니란 걸 이해했을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영화대사같은 뻔한 생각이 교차한다.
'가스등 이펙트'란 용어의 유래인 영화 '가스등'에는 '폴라'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폴라는 아무 이유없이 가스등이 희미해졌다 밝아지는 현상을 목격하지만, 주위 그 누구도 그녀를 믿지 않는다. 유산을 가로채려는 남편은 그녀를 정신병자로 몰아가고 폴라는 점점 자신에 대한 믿음마저 잃어간다.(p.29,30참조) 폴라의 심리를 이용해 완벽하게 그녀를 조종하는 남편, 폴라를 조금씩 미치게 하는 음모, 고통받는 그녀의 맘을 그 누가 이해해줄까? 다행히 수사하던 형사가 자신도 같은 현상을 목격했다고 말하고 폴라는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가스등 이펙트'란 용어는 생소하지만, 실상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가스등 이펙트의 진행양상과 해결책을 제시한다. 남자친구와 케이티, 직장상사와 리즈, 여자친구와 미첼등. 지나치게 남녀관계를 중심으로 풀어간 것은 아쉽지만,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차근차근 접근해가는 서술방식 자체는 인상적이다.
처음 <가스등 이펙트>를 읽고, 가스등 이펙트의 개념부터 시작해 각 사례들, 진행양상, 해결책등을 전부 정리해 리뷰를 쓰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건 아무짝에 쓸모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약, 정리하려는게 아니지 않은가? 표지에 이런 글이 적혀있다. '인간관계의 숨겨진 역학관계를 통찰한 획기적인 심리서'. 절대 과언이 아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고통받는 사람들, 다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에 빠진 사람들, 그들은 어쩌면 가스등 이펙트의 피해자일지 모른다. 그들에게, 이 책은 단순한 책이상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