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전
쓰카 고헤이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간바야시 미치코'는 행복했을까? 전공투 40만을 대표하는 위원장으로 두남자의 여자로, 짧은 생을 살았던 그녀는 과연 행복했을까? 책을 읽으며, 이번처럼 안절부절 못한 적도 없는 것 같다. 무척 화가 났다. 가쓰라기를 비롯한 전공투 지도부의 이중성, 기노시타등의 여성비하적 태도, 투쟁을 위해 정조까지 유린당해야 했던 미치코, '안 돼! 안 돼!'를 몇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간바야시 미치코의 생애'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전공투가 한창이던 시대상을 바탕으로 간바야시 미치코란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다. (간바야시 미치코의 생애에 대해서는 역자후기를 참조하길) 전공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이 책에 그려지는 전공투는 호의적으로 볼 수 없다. '위선과 공명심으로 가득한 젊은 치기'란 생각까지 들었다.

임신한 여자친구 사요를 자살에 이르게 한 전공투의 미남지도자 '가쓰라기'의 여성편력, 끝모르는 정치지향성, 막상 진압이 시작되면 먼저 도망치는 비겁함. 혁명을 들먹이며 여성들을 농락하는 기노시타의 행태. (기노시타의 말을 들어보자. "고매한 혁명이론 앞에서 여자의 정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까 너도 여자라는 의식을 버리고 여자의 정조에서도 해방되고 일단 여기서 나랑 살면서 같이 혁명을 실천하는 거야."(p.169) 아, 한숨만 나온다. 정말 재수없는 기노시타) 후원금 모금을 위해 몸을 바치라는 로쿠조의 주장(p.305)등. 정말 전공투 지도부의 이해할 수 없는 행각.

연장선상에서, 일본과 우리의 문화차를 절실히 느꼈다. 아무리 위원장이라지만 후원금모금을 위해 몸을 판다는 것 이해할 수 없다. 바리케이트 안, 밤새도록 타오르는 불길 옆에서 남자들에게 안기며 미치코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또한 아내를 호스티스시켜 그 돈으로 학생운동하던 기타지마의 행태, 정보수집을 위해 미치코를 야마자키집에 잠입시킨다는 지도부의 결정, 도무지 이들에게 윤리의식이란 뭘까? 혁명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던 해도 된다는 건가? 왜 여성을 도구로 이용하는가? 후원금 모금을 위해 미치코에게 몸을 팔게 했던 그들…그들은 왜 돈많은 여성들을 상대로 몸을 팔지 않는가?

더 놀라운건 간바야시 미치코를 비롯한 여성들이 지도부의 결정에 순순히 따른다는 것이다. 미치코는 후원금을 위해 몸을 팔고, 야마자키집에 잠입해 정조를 바치고 아기까지 낳는다. (미치코가 이후 야마자키에게 사랑을 느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작은 작전이었을 뿐) 얼굴마담, 꼭두각시가 분명한 전공투 위원장이란 직함도 가쓰라기를 위해 수락한다. 미치코를 배후에 두고 전공투를 좌지우지하려던 가쓰라기의 불순한 의도, 역겨운 가쓰라기.

이 작품은 희곡으로도 공연되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희곡과의 접점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미치코와 유코가 함께 공연을 보는 장면(p.205이하)이다. <비룡전>의 내용을 연상시키는 공연이 <하네다 10용사>란 이름으로 상연된다. 공연중인 변사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엄마 얼굴도 몰라요. 엄마는 어떤 사람이지? 난 작전을 위해서 태어났을 뿐인 아이인가? 내가 태어난 순간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고 내가 큰 다음에는 아버지가 노망이 들고, 대체 무엇 때문에 내가 태어났는지 가르쳐줘야 해. 아버지는 노망든 머리로 말했어. (후략)(p.206) 어떤가? 이들이 보고 있는 공연과 <비룡전>의 내용은 같다. 즉, 미치코 사망후 성장한 미치코의 아이가 하는 말이다. 더 나아가 유코는 말한다. 나중에 자기가 쓰고 있는 시나리오의 제목을 '비룡전'으로 할 거라고. 이런 구성은 좀 더 깊이있는 분석이 가능할 듯 한데, 내 능력으로는 무리다.

<비룡전>을 통해, 1970년대 일본의 사회상과 전공투의 대략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쓰다보니 <비룡전>자체보다, 전공투 위원들의 이중성을 성토하는데 초점을 맞추게 됐다. 분명히 하겠다. 전공투 위원들 가쓰라기, 기노시타등에 대한 분노는 <비룡전>에 대한 분노가 아니다. 오해하지 마시라. <비룡전>은 두툼한 분량처럼 깊이있고 인상적인 책이다. 간바야시 미치코의 생애를 따라 숨 쉴틈 없이 진행되는 생생함은 이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것이다. '쓰카붐'까지 일으켰다는 재일교포작가 쓰카 고헤이, 앞으로 그의 작품이 더욱 많이 소개되었으면 한다. 

 

* 구성상 시점이 바뀌는 부분이 있다. '나의 젤소미나'(p.270이하)는 제4기동대장 야마자키 잇페이의 시점이다. 그리고 '잠복'(p.321이하)에서는 야마자키와 미치코의 시점이 번갈아 서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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