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구판절판


<상실의 시대>에는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해 있다'라는, 이성교제 문제로 아버지에게 심하게 꾸중을 들은 여고생이 자살사이트 익명게시판에 적어놓을 만한 문장이 나온다. 원서에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문학사상사에서 낸 번역본에는 혹시 독자들이 이 문장을 놓칠까봐 고딕으로 인쇄한 게 눈에 띈다. 한샘국어식으로 따져서 밑줄을 쫙 그을 만한 중요한 문장인가보다. 그래서 우락부락한 인간들이 모여 앉은 흡연구역에서 담배 한 대 피울 정도의 시간만큼 생각해봤더니 그건 맞는 말이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뿐, 푸른 하늘에도 별은 떠 있듯 평온한 이 삶의 곳곳에는 죽음이라는 웅덩이가 숨어 있다.-38,39쪽

잊혀진다는 것은 물론 꽤나 슬픈 일이지만, 잊혀졌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 마을은 괴기할 정도로 아름다울 수 있었을 것이다. 를 들으며 나는 잊혀지는 것도 그렇게 아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잊혀진 것들은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117,118쪽

어울리지 않기로는 '이런 걸 과연 사랑이라고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만 내게 잔뜩 남겼을 뿐인 첫사랑도 마찬가지였다. 보지 않으면 보고 싶었고 만나면 즐거웠다. 이런 걸 사랑이라고 하는 것일까? 하지만 거기에는 대단히 중요한 뭔가가 결여 돼 있는 듯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만나면 만날수록 괴로워지는 어떤 것,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감미로워지는 어떤 것, 대일밴드의 얇은 천에 피가 배어드는 것을 느끼면서도 스케이트를 지칠 수밖에 없는 어떤 마음, 그런 마음이 없다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든다.-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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