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류진운 지음, 김태성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류전윈(류진운)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닭털 같은 나날>의 호평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 그를 <핸드폰>으로 접했다. 행복했다. 국내소설, 일본소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느낌…도저히 중간에 멈출 수 없는 흥미진진함, 몰입도에 스스로가 놀라 버렸다. 오죽했으면 이런 생각까지 했겠는가, '당분간 중국소설만 읽겠다. 류전윈 작품만 찾아 읽겠다'라는.

<핸드폰>은 핸드폰을 둘러싼 사회문제를 흥미롭게 풀어간 일종의 풍자극이다. 제1장은 '뤼구이화'로 대표되는 과거이야기(핸드폰에 없던 시절)가, 제2장은 '위원쥐엔'으로 대표되는 오늘날 이야기(핸드폰이 일상화 된)가 이어진다. 양자는 연결하는 고리는 '옌셔우이'다. 옌셔우이는 TV프로그램 '진실을 말한다'의 인기진행자로 유창한 언변, 유머감각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인기진행자 옌셔우이의 현재가 바로 제2장이며, 위원쥐엔은 그의 아내다. 제1장은 그의 어린시절로, 뤼구이화는 그에게 연상에 여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안겨준 인물이다.

저자는 뤼구이화가 남편 뉴싼진에게 전화를 거는 과정(p.36이하)을 극적으로 부각시켜, 과거와 오늘날을 대조한다. 즉, 전화 한통화 걸기 위해 수십리를 걷고, 하루종일 기다리고, 전화관리인에게 사정사정해야 하는 과거와, 핸드폰에 일상화되어 버튼 하나면 전화가 가능한 오늘날을 대조하는 것이다. 딱히 전화 한통화하기 힘들었던 과거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왠지 정겹다. 특히 뤼구이화의 전화내용을 듣고 관리인이 확성기를 통해 전달하는 장면은 웃음이 났다. "사람을 찾습니다, 사람을 찾습니다. 뉴싼진, 뉴싼진. 아내 뤼구이화, 뤼구이화가 일간 언제 돌아올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p.47)

'옌셔우이'에게 핸드폰은 골칫거리다. 아니, 단순히 골칫거리 정도가 아니다. 사생활을 감시하는 수간으로 핸드폰이 사용되는데다, 아내 위원쥐엔과 헤어지게 된 결정적 원인이 바로 핸드폰이기 때문이다. 은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우유에와의 애정행각은 핸드폰때문에 발각된다. 핸드폰을 꺼둔 이유를 추궁하며 핸드폰을 살피던 위웬쥐엔에게 우유에의 문자메시지가 때맞춰 도착한 것. '춥네요. 얼른 들어가요. 아까 차에서 자기를 물었던 게 생각나서……잘 때 속옷은 벗지 말아요.'(p.136) 결국, 둘은 이혼한다.

새로운 연인 션슈에와 관계도 핸드폰과의 줄다리기다. 우유에, 위원쥐엔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션슈에. 핸드폰은 이번에도 옌셔우이의 발목을 잡는다. 우유에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션슈에에게 들킨 것. '옌셔우이 씨! 당신은 나를 속여도 되지만 나는 당신을 속일 수 없어요. 지금은 루산에 있어요. 그때 그 방이에요. 푸른 시냇물은 천천히 오래 흐르는 법이라고 했죠? 거짓말!'(p.250) 핸드폰때문에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당하고, 불안에 떨던 옌셔우이. 결국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종이꽃 화환을 태우는 불구덩이에 핸드폰을 던져 버린다.(p.360참조)

옌셔우이의 마지막 행동은, 핸드폰으로 대표되는 현대 정보통신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도리어 인간을 옥쇠고 갈등하게 하는 괴물이 되어버린 현실. IT강국, 전국민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선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핸드폰>속 옌셔우이는 실제 불륜에 해당하는 짓을 벌였기에 핸드폰 때문만이라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성실한 부부생활을 하던 부부가 핸드폰으로 괜한 갈등과 오해를 하게 되고, 이혼까지 하게 되는 경우를.)

<핸드폰>은 현대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핸드폰으로 갈등하는 남녀관계를 흥미롭게 펼쳐낸다. 그 어떤 일본소설보다, 그 어떤 국내소설보다 재미있다. 류전윈, 이미 국내에 많은 팬은 확보하고 있는 '위화'처럼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강력 추천한다.

 


* 한국 여성도 등장한다. 한국 유학생 김옥선.(p.207) 하지만, 유학와서 유명인과 부적절한 행각을 벌이는 좋지 않은 이미지. 한국여성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약간은 걱정스러웠던 부분.

* 등장인물 이름표기가 약간은 어색할 수도 있지만, 이는 '중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는 원칙에 입각한 것이다. 저런 표기는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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