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일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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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는 약점이 많은 부위다. 덮개가 없는 구조여서 더 그렇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기어이 듣게 되고 들어야 하는 이야기는 반드시 놓히고 만다. 모두들 가는 귀가 먹었다. 절대음감을 가졌네 어쨌네 하는 사람들조차도. 음악의 기능중 하나는 우리네 인간으로 하여금 그 덜떨어진 기관을 제대로 지배하고 있다는 환상을 갖게 하는 것이다.-17쪽

짝사랑에 미쳐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나는 그런 광란적인 짝사랑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면 끔직한 방법을 쓰곤 했다. 그 방법이란 게 무엇이냐, 짝사랑의 대상을 '심층연구'하는 것이었다. 즉 대상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하다보면 짝사랑의 열기는 급속도로 식어가게 마련이었다. 대상들은 십중팔구 가공의 인물을 연기하고 있었으니까. 그 사실을 파악하는 순간부터 연구 주제는 지극히 단순해지면서 나는 그 미친 사랑으로부터 쉽사리 빠져나올 수 있었다.-51쪽

네가 누구인지. 미안하다, 그래, 미안하다. 너를 내 품에 안을 수만 있다면. 내 비록 너를 무참하게 망가뜨렸지만, 너를 품에 안아 네게 내 온기를 전해줄 수만 있다면. 네가 누구였는지, 네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애타는 나, 너를 제비라 부르마. 그야말로 네게 딱 어울리는 이름. 제비란 이름을 가진 아가씨는 너 말고 아무도 없으니까. 생기발랄한 아가씨에게 꼭 알맞는 이름, 제비. 왜냐하면 제비만큼 생기발랄한 것도 없으니까.-88쪽

읽을거리가 성스러운 성격을 띠기 위해선 성경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읽히거나 그 반대로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아야 한다. 물론 읽히지 않는다는 다 성스런 책이 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책들을 성스럽다고 해야 할 것인가. 중요한 건 글을 쓴 사람이 그 글을 얼마나 절실히 숨기고 싶어 하는가이다. 얌전하기 짝이 없던 한 아가씨가 비밀을 지키기 위해 제 아버지를 죽이기까지 한 것으로 볼 때 '제비 일기'만큼 성스러운 책이 또 있을까.-99쪽

이 글은 한 미치광이가 뒤죽박죽으로 풀어낸 풀어낸 사랑 이야기이다. 제비와 함께한 사랑 이야기는 시작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끝은 최고로 좋을 것이다. 왜냐, 영원히 끝나지 않을테니까. 나는 제비를 먹음으로 해서 죽어가고 있다. 그 애는 내 뱃속에서 천천히 나를 죽이고 있다. 견딜 수 없는, 그러나 결코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는 고통을 주면서. 나는 그애의 손을 잡고 죽어간다. 왜냐, 나는 글을 쓰고 있으니까. 글쓰기는 내가 제비와 사랑에 빠진 곳. 이 글이 끝나는 순간 나는 죽으리라.-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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