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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의 세계 -하 - 우리는 어떻게 세계와 소통했는가
정수일 지음 / 창비 / 2005년 10월
평점 :
<한국 속의 세계>는 한겨례신문에 '문명교류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을 다듬은 것이다. '세계 속의 한국'은 많이 들어왔지만, '한국 속의 세계'라니, 생소하게도 느껴졌다. 저자는 말한다. "한국 속의 세계가 과연 어떤 것인지는 그 개념조차 낯설다. 그 결과 남들이 우리더라 은둔국이라고 해도 우리는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지냈으며, 스스로가 닫힌 나라라는 자학적인 사관에서도 헤어나지 못했다."(p.5)라고. 저자는 세계와의 관련 속에서 '공시적'으로 우리 문화를 재조명한다.
'문명 교류의 화신, 석굴암'(p.21). 석굴은 불교문화권의 보편적 문화현상이라는 전제하에, 단단한 화강암이 대부분인 신라는 이를 창의적으로 구현했음을 이야기한다. 즉, 산을 파 굴을 만들고 조각된 내용물들을 조립한 후 흙을 덮는 시공법을 도입한 것이다. 이상적인 신체비례, 정각상(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순간의 자세나 표정 p.25참조)의 구현등 석굴암은 그야말로 불교문화의 백미다.
석굴암의 명칭문제를 언급된다. 석굴암의 본래 '석불암'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석굴암'이라 불렀고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석굴암이란 명칭이 어째 이상하게 했더니, 역시 일제찌거기였다니, 하루 빨리 올바른 명칭을 찾았으면 한다.
'신라로 들어온 고대 동방기독교'(p.41) 충격적이었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대략 200년정도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통일신라시대대로 보이는 기독교관련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 상, 돌십자가, 십자무늬장식등. 그럼 이 유물들은 뭐란 말인가? 또한 <삼국유사>에 <구약성서>에 나오는 전설이나 신화와 유사한 내용이 다수 있다는 점도 언급된다.(p.46) 저자는 기독교와 우리와의 만남이 훨신 이전부터 있었고, 따라서 기독교의 역사를 200년이 아니 1200년으로 봐야한다(p.49)고 한다. 대단한 내용이다. 그렇구나.
'조선은 닫힌 나라였는가'(p.159) 조선하면 떠오르는 쇄국, 척화비. 저자는 이런 고정관념을 비판한다. "…일제의 식민사관과 우리의 옳지 못한 자학적 역사관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굳어버린 것이다. 이런한 논리는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편단이며, 무지에서 비롯된 옳지 못한 견해이기도 하다."(p.160) 즉, 우리가 쇄국을 하고 척화비를 세웠던 것은 고작 조선말 10년정도에 지나지 않는 '하나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p.162)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저자의 말은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일제의 잔재가 이토록 뿌리깊게 스며들어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