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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부츠
사와무라 린 지음, 김소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가타부츠>는 저자가 '소박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싶어 쓴 것'이라 한다. 총 여섯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가타부츠 여섯명의 이야기'가 수록된 연작집 정도라 생각하면 될 듯하다.
소박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의 삶이 수학공식처럼 소박하고 평화로운 것은 아니었다. 불륜의 상대와 동반자살을 꿈꾸고(맥이 꾼 꿈), 쌍둥이 오빠의 연인을 질투하는 쌍둥이 여동생(주머니 속의 캥거루), 사람을 살해하기도 하고(역에서 기다리는 사람), 기억상실로 고민하고도 한다.(메리지 블루, 마린 그레이) '보통 사람'이라는 가타부츠의 이야기가 '보통'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건 '보통 사람'을 도리어 이상하게 많드는 사회때문은 아닐까'라고 생각 했다.
[맥이 꾼 꿈] 배우자가 있는 두 사람(신타니 미치오, 마스코 사오리)이 사랑에 빠진다. 이들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백화점에 전시되어 있던 '맥'인형. 우스꽝스런 맥인형이 부담스런 첫마디를 이어준 것이다. 두 사람은 이상한(?) 생각을 한다. 자신들의 사랑이 알려질 경우, 각자 배우자를 포함한 다른이들에게 상처가 될 것이기에 자신들이 죽어버리는게 낫다는 것이다. 다양한 자살방법을 고민하는 이들.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_-
'맥'은 단지 사랑의 매개체가 아니다. '맥'과 두 사람과 오버랩되며, '맥 = 미치오, 사오리'라는 공식으로 확대된다. '환상 동물 그림전'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남자는 이런 말을 한다. "맥은 멸망해가는 동물입니다."(p.18) 뒷발 발가락수로 우제목과 기제목이 나뉘는데, 맥은 기제목이고 멸망할 운명에 처한 동물이란 것이다. 이는 묘한 의미를 가진다. 맥이 멸망할 운명이란 건, 두 사람 역시 안타까운 사랑을 안고 멸망해 버려야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p.46이하 참조)
하지만, 정체불명의 남자는 틀렸다. 맥은 멸종위기의 동물이 아니었다. '멸망할 운명에 놓은 생물 같은건 없다.'(p.47)는 말에 사오리는 뭔가 깨닫는다. 이들 역시 '멸망할'(자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른이를 의식하지 않는 스스로의 인생을 찾은 것이다.
[메리지 블루, 마린 그레이]은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약간 풍긴다. 교통사고로 인해 사고 전 3일가량의 기억을 잃어버린 마사키. 걱정하는 그에게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며칠간의 기억이 없어진다한들 사는데 지장은 없습니다."(p.201)라고. 하지만, 마사키는 후쿠이현 바다를 보며 묘한 기시감을 느끼는데…. 마사키는 과연 잃어버린 3일간 무얼 했단 말인가?
[무언의 전화 저편] 마지막에 실린 이 단편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살을 덧붙여 장편으로 다시 써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화자인 스마 리쿠는 회사동료인 다루미 간토와 절친한 사이다. 그는 다루미의 정의감 넘치는 소신있는 태도에 깊은 믿음을 갖고 있다. 이들의 우정이 이야기의 한 축으로 쭈욱 이어진다.
그러다 한가지 사건이 부각된다. 우애장 여성 피살사건. 스토커 비슷한 남성에게 칼에 찔린 여성이 도와달라며 도망다녔지만 같은 건물(우애장)에 살던 이웃중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아 결국 살해당한 사건. 놀랍게도 다루미는 피해자의 옆집에 살고 있었다. 그에게 쏟아지는 엄청난 비난, 경멸, 하지만 다루미는 당당하다. "나는 양심에 꺼릴 만한 일은 하지 조금도 하지 않았어."(p.274) 정의감 넘치는 다루미에겐 어떤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다루미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연속으로 보이는 무언의 전화가 주말마다 다루미를 괴롭히고, 스마 리쿠는 무언의 전화를 걸만한 이를 찾기 시작한다. 긴장감 넘치던 이야기의 결론은 천만다행이었다. 허탈할지도 모르지만, 저자가 얼마나 꼼꼼하게 이야기를 구성했는지 알 수 있다.
사와무라 린의 첫 작품, 마음에 든다. SF작품으로 데뷔한 작가인 만큼, <리프레인> <얀이 있는 섬>같은 작품을 빨리 접하고 싶다. 작품 소개를 잠깐 봤는데, 완전 꿈꿔왔던 스토리^^
* 저자의 말, 역자후기부터 읽는다. 불변의 독서원칙이다. 김소영님의 후기는 지금껏 읽어왔던 역자후기중 최고다. 돌이켜보니, 김소영님이 우리말 작업하신 책은 전부 인상적이었다. <사신치바> <피쉬 스토리> <마신유희>등등.
* '가타부츠'의 사전적 의미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 또는 착실하고 품행이 바른 사람'이라 한다. 역자는 '보통 사람'이라고 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