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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나의 야고보 길 여행
하페 케르켈링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를 읽기 전, 걱정과 기대가 반반이었다. [기대] '이 책은 독일에서 무려 200만부가 팔린 엄청난 히트작이야. 거기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기, 흥미진진 하겠는 걸' [걱정] '하지만, 엄청난 판매고는 저자의 유명세 때문일지 몰라. 국내독자는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잖아, 과연 공감할 수 있을까? 또 기독교 순례여행이라니, 난 무교라고!'. 과연 기대에 부응할 것인가? 걱정이 현실이 될 것인가?
분명히 말하겠다.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는 '기대 이상'이었다. '하페 케르켈링'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와 함께 숨쉬며, 느끼며, 야코보 길을 걸었다. 책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독일남자와 호흡을 같이 한다는 것, 놀라운 일이다.
독일의 유명한 코메디언, 하페 케르켈링은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열중하다 병원에 실려가게 된다. 심근경색이 의심되고, 담낭은 터져 버렸다.(p.12) 그는 자신이 견뎌낼 수 있는 작은 의무를 부과하기로 하고, 야고보 길 순례여행을 결정한다. 바로 이 책은 그가 순례여행 틈틈이 기록한 글을 옮긴 것이다. 2001년 6월 9일부터 7월 20일까지 40여일간의 여정이 차곡차곡 기록되어 있다.
처음 걱정했던 것처럼 하페 케르켈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점은 아쉬웠다. 그가 진행하는 방송, 코메디, 사상등을 알았다면 더욱 깊이 감동 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유명 코메디언이자 방송인이 유재석씨가 갑자기 실크로드 기행을 떠나고, 이를 바탕으로 여행기를 펴낸다. 거기엔 생생한 여정이 실려 있다. 독자들은 유재석씨의 책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그를 다시 본다.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어떤가? 반응은 폭발적일 것이다. 요는 독일인이 이 책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건 하나의 아쉬움 토로일 뿐이다. 책을 읽어나가며 하페 케르켈링이란 인물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내가 독일인이 아니기에, 아무런 선입견없이 그를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동성연애자이다.(p.217참조) 책을 읽다 이 사실을 알고 놀랐다. 독일 최고의 방송인이 동성연애자라니...아직까지 비뚤어진 시각이 남아 있던 것이다. 하지만 저건 중요한게 아니란 것, 놀랄 일이 아니란 것, 다 알지 않는가.
'순례여행기'라지만, '순례'라는 단어가 풍기는 엄숙함과 지루함에 기죽을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여정자체가 즐겁고, 재미있다. 저자가 코메디언이란 사실을 잊지 말자. 문장 하나하나 특유의 유머감각이 녹아있다. 예를 들어, 주근깨 여인 '앤'에게 치한으로 오해 받는데도 '오늘의 깨달음'에 장난스럽게 '엉큼하게 처다봐서는 안 된다!' 라고 기록한다^^
말이 나온김에, '오늘의 깨달음'이란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한마디다. 그가 느낀 한마디는 짧지만 가슴 깊게 다가왔다. 인상적인 한마디. "무엇이 우리를 인간적으로 만드는가? 우리의 작은 결점들과 큰 실수들. 그것이 없다면 우리 모두는 걸어 다니는 신이다!"(p.111) 또한 여행기답게 사진들도 수록되어 있다. 컬러가 아닌게 약간은 아쉽지만, 깊이 있게 여행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야고보 길 순례여행을 통해 그가 어떤 걸 얻었는지, 이 책을 통해 내가 뭘 얻었는지,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는 야고보 길을 걸었고, 난 이 책을 읽었다는 것, 잠시나마 하나가 될 수 있었다는 것.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즐겁고 행복한 기억으로 오래오래 내 기억속에 남을 것이다. 가슴이 벅차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