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파비앙을 죽인 건 잘한 일이야. 그는 고약한 남자는 아니지만 너무나 평범해. 그에게 평범하지 않은 것은 권총뿐이었어. 하지만 그는 결국 그 권총을 아주 진부하게 사용했을거야. 동네 불량배들을 위협하거나 아기 장난감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아이에게 탕기나 조엘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그 애에게 진부한 세상, 이미 닫혀 있는 시야를 주는 것과 다름없어. 하지만 난 내 아기가 힘껏 무한을 품었으면 좋겠어. 내 아기가 그 어떤 제약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아이에게 특별한 운명을 약속하는 이름을 주고 싶어."-17쪽
몰리에르의 작품 <인간 혐오자> 속에서 젊고 예쁘고 매력적인 셀리멘은 늙고 신랄한 아르시노에의 비난을 듣는다. 질투로 새파래진 아르시노에는 셀리멘에게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과시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자 셀리멘은 너무나도 유쾌한 방식으로 그에 대응한다. 하지만 몰리에르가 아무리 천재적인 솜씨를 발휘했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그로부터 거의 4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거울 앞에서 미소짓고 있는 미녀들에게 사람들은 우울하고 금욕적이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는 거울 속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기쁨을 경험한 적이 없지만, 그런 은총이 주어졌다면 그 무구한 즐거움을 결코 거부하지 않았으리라. 이 여담은 무엇보다도 전 세계의 아르시노에들을 위한 충고이다. 사실 그런 일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그 행복한 여자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에 흠벅 취한다고 해서 누구한테 해가 된단 말인가?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서글픈 상황에 처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는 셈이 아닐까? (이어짐)-37,38쪽
내가 여기서 말한 미인이란 거짓 아름다움으로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고 배척하는 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에 소박하게 매혹되어 그 자연스러운 기쁨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고자 하는 이들을 말한다. 만약 아르시노에들이 셀리멘들을 거세게 비난하면서 자신들의 외모에서 그나마 봐줄 만한 부분을 부각시키려 애쓴다면, 그들은 두 배로 추해질 것이다. -38쪽
"나는 내리는 눈에게 나 자신을 내주었어. 내가 눈 아래 눕자 눈은 내 주위에 대성당을 지었지. 눈이 천천히 벽을 만들고, 이어 둥근 천정을 만드는 것을 나는 지켜보았지. 나는 나만을 위해 지어진 대성당 안에 누워 있는 조각상이었어. 이윽고 문이 닫히고 죽음이 나를 찿아왔지. 죽음은 처음에는 하얗고 보드라웠지만, 검고 단단해졌어. 죽음이 나를 데려가려는 순간, 내 수호천사가 와서 나를 구해준 거야."-84쪽
수업 첫날 오페라 무용 학교 수습생들은 갑자기 어린시절을 강탈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루 전만 해도 그들의 몸은 물과 배려와 사랑을 듬뿍 받는 식물이었다. 나무의 성장은 멋진 미래를 약속하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현상으로 권장되었고, 가족들은 비옥한 토양이 되어 주었다. 삶은 느릿하고 포근했다. 하지만 하루만에 그들은 그 촉촉한 부식토에서 뽑혀 나와 메마른 세상에 내팽겨쳐졌다. 매서운 눈길을 한 전문가가 이 줄기는 더 길어져야 하고 이 뿌리는 다듬어져야 한다고 독단적으로 판단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들은 그렇게 될 터였다. 이곳 사람들은 그런 기술에 정통한 이들이었던 것이다.-110쪽
플렉트뤼드는 이내 몇 가지 의문에 휩싸였다. 그 애가 그 학교를 입학한 것은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서였지, 자는 것이 최고의 소원일 정도로 삶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곳에서 그 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춤을 추었지만 춤을 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 애는 마치 쓰는 일을 금지당한 채 줄곧 문법만을 공부하고 있는 작가가 된 것 같았다. 물론 문법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결국 글쓰기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닌가. 목적을 빼앗긴 그 애는 하나의 부호에 불과했다. 오페라 무용 학교에서 보낸 그때처럼 그 애가 자신이 발레리나 같지 않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얼마 전까지 받았던 발레 수업에서는 조금이나마 안무법을 구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연습뿐이었다. 이곳의 보조봉은 갤리선을 연상시켰다.-113쪽
"이곳을 왜 '에콜 더 라'(쥐들의 학교)라고 부르는 줄 알아? '쥐'라는 게 학생들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교사들을 말해. 그래, 그들이 바로 커다란 이빨로 발레리나들의 속살을 갉아먹는 비열한 쥐들이야. 학생들에겐 발레에 대한 열정이 있지만 교사들에겐 거의 없어. 쥐의 본분에 충실해 우리를 갉아먹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야. 쥐란 인색한 존재를 뜻해. 돈에만 인색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름다움에, 즐거움에, 삶에, 춤 자체에 인색한 거야! 그들은 입으로는 춤을 사랑한다고 하지! 하지만 천만에, 그들이야말로 춤의 가장 큰 적인걸! 그들은 춤을 증오하기 때문에 선택된 이들이야. 그들이 춤을 사랑한다면, 우리가 이렇게 힘들 리가 없어. 학생들은 교사가 좋아하는 것을 자동적으로 좋아하게 되어 있어. 여기에서는 우리에게 초인적인 것을 요구하고 있어. 교사들 자신은 예술을 증오하면서 우리에게는 그들의 졸렬한 정신이 하루에도 백 번씩 배반하는 예술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라고 요구하니 말이야. 춤이란 비상이자 우아함, 너그러움. 절대적인 헌신이야. 쥐들의 정신 상태와는 정반대라고."-118쪽
살인은 인간의 몸을 가지고 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성행위와 비슷하다. 성행위의 경우, 끝난 다음 그냥 가버리면 된다. 하지만 살인은 그런 손쉬움을 허락하지 않는다. 살인이 성행위보다 당사자들 사이에 휠씬 강한 유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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