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울프
닐 게이먼.케이틀린 R. 키어넌 지음, 김양희 옮김 / 아고라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베오울프>는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한 동명의 고대서사시를 각색한 작품이다. 필연적으로 이야기 전반에 장엄하고 고풍스런 분위기가 풍기는데, 현대적 감각이 어울려져 작품의 품격을 한차원 높혀준다. 장면마다 영상을 떠올려가며 읽었다. (헐리우드에서 영화화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특히 그렌델의 습격으로 아수라장이 되는 헤오로트 궁 장면(p.35이하), 그렌델과 베오울프의 격전(p.132이하), 그렌델의 어미 '물의 여인' 찿아 호수를 누비는 베오울프의 모습(p.211이하)의 묘사는 이 작품의 백미다. '소설속에 몰입케 하는 블랙홀' 같은 부분이었다.

<베오울프>를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었다. 첫째, 그렌델의 습격과 공포, 베오울프의 등장(처음~p.154). 둘째, '물의 여인'의 분노와 왕좌에 등극한 베오울프(p.155~p.244). 셋째, 베오울프 왕과 숨겨진 비밀(p.255~끝). 첫부분과 둘째부분은 '그렌델의 죽음'이 구별의 축이며, 둘째와 셋째는 '30년이란 시간의 흐름'이 구별의 축이다.

바다가 닿지 않는 곳에 높은 궁전을 세워 백성들에게 선물하겠다던 왕이 있다. 발 덴마크의 흐로드가르 왕. 그는 헤오로트 궁전을 지어 약속을 지키고, 경축하는 향연엔 감미로운 술, 웃음, 즐거운 노랫소리가 넘쳐난다. 왕국의 번영과 영화는 영원할 듯 보였다. 하지만 이것이 저주의 근원이었다니...

시끄러운 소음, 특히 음악소리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존재가 있다. 거인족 '트롤'의 피가 흐르지만 순수한 트롤족은 아니며, 인간을 즐겨 먹는 존재, 그의 이름은 바로 '그렌델'이다. 그는 다짐한다. 소란스럽게 자신의 평온과 고요를 방해한 저들을 응징하기로. 그렌델의 공격으로 헤오로트 궁전은 아수라장이 되고(p.35이하), 계속되는 그렌델의 공격때문에 왕국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소문까지 퍼진다.

그러던 중, '벌들의 늑대'라 불리는 베오울프가 왕국에 찿아오는데...

<베오울프>는 서구의 전형적인 영웅주의 공식을 답습하지 않는다. 단순한 '영웅만들기' 차원이 아닌, 인간적 고뇌와 철학적 사유까지 포괄한다. 이것이 <베오울프>의 진정한 가치다. 자세히 살펴보자. '베오울프'의 행동이나, 언행은 일반적인 '영웅'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 등장이후 반복되는 오만한 자신감, 웨알테오우 여왕과 이상한 관계등, 그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없었다. (도리어, 그렌델이 가엾다.)

흐로드가르 왕과 베오울프의 '끝'과 왕위등극과정의 유사성, 아니 동일함. 젊은 시절 용맹함을 떨쳤다는 공통점. 그리고 물의 여인과의 숨겨진 진실등을 고려한다면, <베오울프>는 '베오울프'란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결국 인간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과 비극의 이야기다.

'베오울프'의 왕위등극과정을 살펴보자. 그렌델 어미의 복수로 왕국은 벌컥 뒤집히고,(p.188) 베오울프는 부하 위글라프와 함께 그렌델 어미의 근거지인 숲속 호수로 향한다. 갖은 고초끝에 삶마저 체념하던 그 앞에, 그렌델의 어미 에글리카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간엔 과연 무슨일이 벌어질까? 이 부분은 이야기 후반을 이끄는 미스테리의 열쇠다. (이 정도만 언급하겠다. 스포일러가 두렵군)

p.245이하는 30년의 시간의 흐른 후 이야기다. 왕위에 오른 베오울프도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버렸다. 과거 흐로드가르 왕을 보는 듯한 베오울프. 하지만 용맹만은 여전하다.(p255참조) 30년의 시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뿔잔'이다. 그렌델 퇴치 포상으로 흐로드가르 왕이 베오울프에게 준 신비의 뿔잔. 그렌델 어미를 찿아간 후 사라졌던 뿔잔이 다시 발견된 것이다. 이에 이상하게 반응하는 베오울프. 비밀의 빗장은 이미 풀렸다.

'흥미롭다'처럼 쉽게 소비되는 말도 없다. 하지만 <베오울프>를 읽으며 '흥미롭다'란 말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 깊이 느꼈다. 지금까지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근래 읽은 책중 최고다. 고대 유럽의 환상적 분위기 속에서 펼쳐지는 장엄하고 흥미로운 대서사시, 꼭 한번 느껴 보시길.


* <베오울프>의 표지는 정말 근사하다. 이미지파일에 속지 말고 서점가서 실물로 보시길. 소장욕구가 막 솓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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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6 18: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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