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사람들은 메타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오. 그런데도 이 단어는 아주 잘 팔려나가고 있지. 도도해 보이거든. '메타포'. 일자무식쟁이라도 이게 그리스어에서 온 단어라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을 거요. 어원이 기똥차게 고상해 보이지. 허세야……순 허세라고. '메타'라는 접두사가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과 '포'의 어원인 '페로'가 별 뜻도 없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쓰이는 동사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라도 '메타포'란 두루두루 아무 뜻으로나 쓰일 수 있는 말이라고 결론짓게 될 거요. 통상적인 용법을 살펴보더라도 똑같은 결론에 이르게 될 테고."-25쪽
"천만에! 그건 최고의 독자에 한해서만 가능한 일이오. 그 외에는 다들 계속해서 타고난 진부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게다가 독자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독자란 것 자체가 희귀한 부류에 속한다오. 대다수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으니까. 그 문제에 대해 누군가 명언을 남겼지. 웬 지식인인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구먼. '사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읽는다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한다 해도 잊어버린다.' 이토록 실상을 명쾌하게 요약하는 말이 어디 있겠소. 안 그러오?"-78쪽
"인간을 미워할 이유는 무수히 많다오. 내 생각에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허위요. 결코 떨쳐낼 수 없는 특성이지. 요즘만큼 허위가 승승장구하는 시대는 없었소. 아시다시피 난 여러 시대를 살았다고. 하지만 단언할 수 있소. 이 시대만큼 가증스러운 시대는 없었다오. 한마디로 허위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시대요. 허위적인 건 불성실하거나 이중적이거나 사악한 것보다 더 나쁘지. 허위적이라는 건 우선 자기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오. 뭔가 양심에 걸리는 게 있어서가 아니마 '체면'이니 '자존심'이니 하는 말로 장식되는 졸렬한 자기만족을 맛보기 위해서 말이오. 또 남들에게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오. 하지만 정직하고 사악한 거짓말, 남을 궁지에 빠뜨리기 위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지. 암, 아니고말고. 사이비 거짓말, '라이트'한 거짓말을 하는 거요. 그러니까 미소를 띤 채로 욕을 해댄다고. 호의를 베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오."-81쪽
"입술은 두 가지 역할을 하오. 첫째, 말을 관능적인 행위로 만들어준다오. 입술 없는 말이란 게 어떤 것일지 상상해본 적 있소? 멍청하게 차가운 그 무엇, 뉘앙스 없이 서걱거리는 그 무엇일 거요. 꼭 법원 사무관의 말처럼 말이오. 한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니 그게 바로 입술의 두번째 역할이라오.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지 못하도록 입을 다물게 해준다는 거지. 손 또한 입술을 갖고 있소. 써서는 안 되는 것을 쓰지 못하게 방해하는 입술 말이오. 이건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역할이오. 글재주와 불알과 자지를 제대로 갖춘 작가들이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한 탓에 작품을 망치곤 했지."-93쪽
"기분이란, 인간이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허위로 꽉 찬 깜찍한 이야기요. 인간의 존엄성을 획득했다고 느끼기 위해서, 응가를 하는 순간에도 정신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기 위해서 말이오. 특히 여자들이 기분을 잘 꾸며대지. 그네들이 하는 일이란 건 머리를 쓸 필요가 없는 일이오. 그런데, 우리네 인간이라는 족속한테는 별난 성질이 하나 있거든. 두뇌가 한시도 가만히 있으려 하지 않는다는 거요. 별반 쓸모 없을 때조차도 말이지. 이 한심스런 기술적 결함이 우리네 인간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오. 주부의 두뇌란 게, 양지바른 곳에 곤히 잠든 뱀처럼 고귀한 무위나 우아한 휴식에 자신을 내맡기는 게 나을 텐데, 그러기는커녕 자신이 쓸모 없는 존재라는 사실에 분개해 가지고는 오만하고도 멍청한 각본을 분비해댄단 말이오……집안일을 천한 것으로 여기게 만드니 오만하달 밖에. 또 어리석고. 청소기를 돌리는 일이나 변소를 광내는 일은 사실 하나도 천할 게 없거든. 응당 해야 하는 일이지. 그뿐이라고. 그런데도 여자들은 자기네들이 무슨 고결한 사명이라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걸로 생각한다오. 대다수 남자들도 마찬가지요.(이어짐)-101쪽
그딴 생각에 좀 덜 집착해서 그렇지. 왠고 하니, 남자들의 두뇌는 회계니 승진이니 납세니 탈세니 하는 것들로 복잡해서 망상 같은 것에 내줄 자리가 더 적거든."-102쪽
"지금으로부터 이십사 년 전, <살인자의 건강법>에 대해 신문에 어떤 서평이 올랐는지 아시오? '상징으로 가득한 동화적인 소설, 원죄, 즉 인간 조건에 대한 몽환적인 은유'운운. 그러니 읽기는 하지만 읽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밖에! 밝히기 위험천만한 사실을 난 얼마든지 글로 써도 되오. 다들 은유로만 볼 테니까. 별반 놀라운 일도 아니오. 사이비 독자는 잠수복을 갖춰 입고, 유혈이 낭자한 내 문장들 사이를 피 한방울 안 묻히고 유유히 지나가게 마련이거든. 가끔씩 탄성을 지르기도 할 거요. '멋진 상징인걸!' 이런 게 이른바 깔끔한 독서란 거요. 기막힌 독서법이지. 잠자기 전 침대에 기대앉아 책을 읽을 때 쓰기 딱 좋은 방법이오.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데다 이불호청을 더럽히지도 않으니까."-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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