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세계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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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건 바로 그의 부재가 너무나 명백할 때이다.-70쪽

근데, 창조가 이루어진 다음 신의 임무가 뭐였더라? 그것은 아마도 책이 출간된 다음 작가의 임무와 유사할 것이다. 자신의 텍스트를 공개적으로 사랑하고, 칭찬, 야유, 무관심을 받아들이는 것. 비록 그들이 옳다 하더라도 작품을 바꿀 수는 없는데도 꼬치꼬치 작품의 결점을 지적하는 독자들과 맞서는 것. 작품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 그 사랑은 그가 그 작품에 구체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72쪽

입을 다물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 파노니크는 자신의 책에 대해 끝없이 군소리를 늘어놓는 소설가들을 떠올렸다. 그래서 어쩌겠다고? 그럴 바엔 차라리 책을 쓰는 순간 필요한 모든 사랑을 쏟는 것이 책에는 훨씬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제때 그 사랑을 쏟지 못했다면, 요설이 아니라 단 몇 마디 말에 이어지는 긴 침묵으로 표현되는 진정한 사랑으로, 있는 그대로의 그 텍스트를 사랑하는 것이 더 유익하지 않을까? 창조, 그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 자체로 너무나 황홀한 경험이니까. 신적인 작업이 복잡해지기 시작하는 건 그 다음이었다. -73쪽

사람이 하나의 용어로 지칭되게 되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낱말을 갖게 되면, 훨신 더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언어란 실용적이기보다는 미적인 도구이다. 장미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그것을 지칭하는 단어를 갖고 있지 못하면, 매번 '봄에 활짝 피어나고 좋은 향기가 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것은 훨씬 덜 아름다울 것이다. 그리고 그 단어가 더 호화로운 것, 다시말해 하나의 이름일 때, 그것의 임무는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데에 있다. -99쪽

"시청자 여러분, 텔레비전을 끄십시오! 가장 큰 죄를 짓고 있는 건 바로 당신들입니다! 당신들이 이 가증스러운 방송의 시청률을 올려주지 않는다면, 이 방송은 이미 오래 전에 막을 내렸을 겁니다! 진정한 카포는 바로 당신들이에요! 그리고 당신들이 우리가 죽어가는 것을 바라볼 때, 살인자는 바로 당신들의 눈입니다! 당신들이 바로 우리의 감옥, 우리의 형벌입니다!"-113쪽

"당신들이 우릴 보고 우린 당신들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당신들이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당신들은 믿고 있어. 하지만 그건 착각이야. 난 당신들을 똑똑히 보고 있어! 내 눈을 봐, 내가 당신들을 얼마나 경멸하는지 알 수 있을거야. 그게 바로 내가 당신들을 보고 있다는 증거야! 나는 보고 있어, 입을 헤 벌리고 우리를 보고 있는 사람들을. 들키지 않은 채 우리를 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 '난 다른 사람들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보기 위해 바라볼 뿐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럼으로써 그들보다 더 낮은 곳으로 추락하는 사람들 역시 나는 보고 있어! 내 눈은 텔레비전 속에서 이미 당신들을 보고 있었어! 당신들은 내가 당신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의식하며 내가 죽어가는 걸 보게 될거야!"-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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