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아이 -상 영원의 아이
텐도 아라타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1999년 7월
구판절판


'반드시 이 세상이 멸망할 날이 올 거야. 아무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이 세계는 이제 곧 멸망하여 아무도 구원받지 못할 거야. 그러나 어쩌면 우리한테는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 이 세계에서 버림받고 부정당한 우리들이니까, 이 세계가 부정될 때 비로소 날개를 펼 찬스가 찿아 올지도 모르잖아….'-19쪽

"네놈도 이게 병이란 걸 알고 있겠지. 아무리 그만두려 해도,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을. 너무 괴로워서, 누군가가 말려 주기를 바란 적도 있겠지. 너 자신이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도 해보았겠지. 그러나, 그래도 그만둘 수 없었을 거야. 앞으로도 계속 이런 짓을 하게 될 거야. 몇 년 형무소 생활을 해봐야, 네놈의 병은 절대로 낫지 않아. 너의 어린 시절이 그랬을 테니까. 너도 당했을 테지. 그러나 복수를 하고 싶으면, 바로 그때 했었어야 했어. 이제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어. 네놈은 또 다른 어린애에게 상처를 입힐 거야. 견딜 수 있겠어? 그런 인생을 견딜 수 있겠난 말이야…. 내가 끝내 주지. 너를 구원해 주겠어."-108쪽

"키에르케고르라는 사상가였던가?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워진다고 한 사람이. 철학자 야스퍼스는 거기에다 주석을 달았지. …그러나 사랑하는 자만이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고 말이야."-176쪽

"너는 어쩌다 우연히 태어난 거야. 나는 더 재미를 보고 싶었는데, 그 멍청한 것이 참을성도 없이 그냥 싸 버려서 생긴 거란 말이야. 떼려고 했지만, 할망구가 눈치를 채고 낳으라고, 우리 부모까지 동원하여 나무라고, 그놈도 열심히 도와 주겠다고 해서 믿고 낳았어. 그랬더니 그 멍청이는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 할망구는 나를 씨받이로 여겼는지, 아이 낳는 기계 정도로나 취급하면서 하는 일마다 잔소리만 늘어놓았어. 나름대로 잘 키우려고 했어. 너를 낳으면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참아야 했으니까. 역시 내 자식이라 귀엽긴 했지. 그런데, 너는 밤마다 울면서 잠도 못 자게 했어. 그 멍청이와 할망구는 내가 아기를 잘못 키워서 그렇다고 지랄이구. 너는 나를 도와 주기는커녕, 툭하면 아프고, 방을 어지럽혀 놓고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괴롭혔어. 정말 불효막심한 애였어. 너 덕분에 나는 늘 야단만 맞고,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야 했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거야, 알겠니? 집에다 불을 지르려 했던 적도 있을 정도니. 네 아빠가 조금만 더 어른스럽고,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만 아니었더라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야….(이어짐)-225쪽

결국, 이 사회는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지만, 여자한테는 불공평해. 여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그것이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세상이니까. 남자의 사회라고 하지만, 아냐. 유치한 얼간이들의 사회야. 일 때문에 고생이 심하다고 하는데, 할 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모르고 있어. 일을 해서 돈도 벌고 평가도 받고 뭔가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한테나 즐거운 일이야.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살아가는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행복한 일이라구. 그것을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떠벌리는 놈은 여자를 어머니 대용으로 생각하는, 되다 만 어른이지. 나는 자유롭기를 선택한 거야. 너를 돌보기도 힘든데, 그 남자와 할망구까지 돌봐야 한다고? 그럼, 내 인생은 뭐야? 나도 부모에게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란 사람이야. 소중하게 자란 사람이란 말이야. 그런데 왜 가정에 들어서는 순간, 야단만 맞고 순종만 하면서 살아야 해? 어릴 적에서는 남자와 여자는 다 똑같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교육을 받았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까 전혀 아냐.(이어짐)-226쪽

너도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의 희생양인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내게는 아무런 힘이 없어. 사회적 모순의 책임을 질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다구. 나와 함게 살면, 우리 둘 다 무너질 거야. 그렇지만, 네게는 그 집이 있잖니. 나처럼 무일푼으로 쫒겨난 게 아니잖아. 좋은 집에, 아버지하고 할머니하고 함께 남았으니까. 나도 네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괴로울 때는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어린아이들을 생각해. 너는 그보다 훨신 더 행복하니까."-226쪽

입원하기 전에도 가끔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는데, 입고 있는 옷에서 냄새가 났다. 처음에는 착각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몇번 이나 그런 일이 있고서, 주위 사람들도 자기를 묘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머니 시호에게 냄새가 난다고 호소했다. 시호는 유키의 옷에 코를 박고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다고 거듭 말했지만,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유키는 자기 손으로 집요하게 옷을 씻었다. 그래도 냄새는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해지기만 했다. 시호가 유키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만두라면서 나무랐다. 유키는 눈물을 흘리면서, 왜 몰라 주느냐고 따졌다. 드디어 시호는 성가시게 굴지 말라고, 유키의 빰을 쳤다.-305쪽

'노력하지 않으면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당신들은 거듭 강조했다. 노력하지 않으면 인생은 의미가 없다고 질타했다. 그렇지만 당신들이 말하는 노력, 그리고 노력하는 길은 무한히 욕망을 충족시키는 생활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소용이 있는가 없는가로 모든 생명의 가치를 판단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늙음과 장애를 무시하는 한이 있어도, 거짓말로 약속을 파기하는 한이 있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락고 변명할 수 있는 그런 길을 말하는 게 아닌가? 그런 길로 나아가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냐고 물으면, 당신들은 시끄럽다고 뿌리쳐 버린다. 이상한 애라고 상대도 하지 않는다. 개성과 순종이 동시에 요구되고 있다. 실체도 없는 환상이 나를 무참히 찌부러뜨린다.'-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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