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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의 삶과 욕망
박희숙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평생 앞을 못보던 맹인이 어느 순간 눈을 뜬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그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유명 화가들의 명작을 보고 있노라면 저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 또다른 눈을 뜨는 기분...물론, 약간 과장을 더해서^^
<명화 속의 삶과 욕망>은 제목처럼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조명한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특히 사랑과 성性에 관련된 작품들이 많았는데, 그 점은 특기할만 하다. 기본적인 구성은 이러하다. 하나의 소주제에 두편의 명작이 각각 한페이지 크기로 소개되고, 그림에 대한 저자의 설명과 분석이 이어진다. 저자는 전문적인 이론은 배제하고 철저히 초보자를 위한 서술을 한다. 그래서 그림에는 문외한인 사람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인상적인 그림을 꼽자면, '여성의 정체성'이란 소주제로 소개된 '필립 칼데론'의 <깨어진 맹세>(p.130)와 '사랑으로 크는 나무'란 소주제로 소개된 '프리다 칼로'의 <유모와 나>(p.215)이다.
<깨어진 맹세>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성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담에 기대어 좌절한 표정을 짓는 여성이 보이고, 담 안에는 그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이 다른 여성과 희희덕 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이 그림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좌절하는 여성의 표정이 정말 생생하기 때문이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다. 거기다 여성이 너무나 아름답다. 왜 버림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올리비아 핫세가 떠올랐음)
<유모와 나>는 기괴한 작품이다. 괴물같은 여인이 역시 괴물같은(얼굴만 성인이고 몸은 아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작품은 유모에게서 양육된 상처를 그려낸 프리다의 자전적인 작품이라 한다. 괴물같은 모습은 유모가 쓰고 있는 가면 때문이고, 이는 유모와 프리다의 기계적 관계를 상징한다.(p.219참조)
이 책을 도서관에 앉아 한번에 쭈욱 읽었다. 하지만 그러지 마시길 바란다. 후회하고 있다. 한번에 다 읽기 보다는 하루에 한두개 소주제만 읽으시길. 그림을 찬찬히 음미하면서, 첫느낌과 글을 읽은 후 느낌을 비교해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읽는다면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림에 관심은 있지만 왠지 어렵게 느끼셨다면,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