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가 온다
백가흠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귀뚜라미가 온다' 집중분석

원래 한 집 건물에 달구분식과 바람횟집이 얇은 벽을 사이로 자리 잡고 있다. 달구분식엔 달구와 늙은 노모가, 바람횟집엔 스물셋의 남자와 서른일곱쯤인 여자가 살고 있다.  '달구분식' 마흔 가까운 노총각 달구가 거의 매일 늙은 노모를 구타한다. 그런 아들이지만 늙은 노모는 아들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는다. '바람횟집' 거의 어머니뻘인 여자와 남자는 서로의 몸을 탐닉한다. 그것도 폭력적으로.

'달구분식과 바람횟집이 원래 한 집'이라는 설정은 주목할 만하다. 횟집남자와 달구가 별개의 인격이 아닌 본래 하나인 존재의 분열이라고 난 이해했다. 즉, 이들은 하나의 남성성을 상징하는 등가물이다. 좀 더 나아가 시간적 관계를 설정할 수 있을 듯 하다. 나이가 어린 횟집남자를 이전시점, 달구가 횟집남자의 미래모습이다. 여기에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접목해보자. 횟집남자가 여자를 '엄마'라 부르며 모성을 추구하는 것은 전형적인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다. 여기에 억압자인 아버지가 죽고(달구에 의한 살해) 그 이후 달구가 등장한다.

문제는 '달구가 왜 원시적 욕망인 어머니를 학대하는가'이다. 달구의 행동을 타나토스의 발현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주변에 어머니밖에 없는 현실에서 타나토스가 이상하게 발현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지나친 논리의 비약인지는 몰라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노골적인 성묘사와 폭력, 사투리이다. 이는 과연 작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등장인물 내면의 욕망과 본성을 제대로 표출해 내준다고 본다.

그럼 귀뚜라미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귀뚜라미는 폭풍이고 그 폭풍은 결국 달구분식과 바람횟집을 쓸어가 버린다. 귀뚜라미의 상징성은 무었인가? 뀌뚜라미에게 희생된 것은 여성들 뿐이지만, 여성들은 은빛전어를 따라 갔다는 서술로 미뤄보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듯 하다. 라캉의 환타지 공식을 고려한다면(과연 타당할런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원시적 욕망인 어머니 내지 어머니의 등가물은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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