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숨' 집중분석

할머니와 장성한 손자 대창, 그리고 미연. 이 세 인물이 등장한다. 할머니는 손자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엑센 인물이다. '늙은 마녀'(p.38), '골을 숟가락으로 잘라낸다'(p.39) 같은 표현처럼 그녀의 이미지는 상당히 그로테스크하다. 결혼하고 싶다는 손자의 말(p.40)에 아무 대꾸없이 '송치(소 뱃속에 있는 송아지)'를 먹고 싶다(p.41)는 할머니.

오늘날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이들의 관계는 조금 이상하다. 왜 할머니는 압도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일까? 경제력 때문일까? 아무리 어릴적 부터 키워준 할머니라지만 결혼하겠다는 손자에게 저런 반응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어떤 이유로 할머니가 주도권을 쥐고 있던, 중요한 건 아니다. [숨]의 핵심은, 할머니 / 주인공 / 미연 사이 이미지 대립구도이다. 할머니는 원초적인 남성성에 가까운 강렬함을 소유하고 있다. 이에 반해 미연은 여성적이고 다소곳하다. 이는 제사준비를 위해 집을 찾아온 미연과 할머니가 함께 제사상을 준비하는 모습(p.51)에서 극적으로 대조된다. 중간적 위치에 있는 대창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 불안 불안한 하기만 하고.

주인공이 하는 일을 소머리를 갈라 다듬는 일이다. 소머리를 다듬는 청년, 소골과 허파를 먹는 할머니, 내장을 취급하는 국밥집 주인등 인상적이다. 특히 소머리를 가르는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된 부분(p.47,48 이하)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오랜 취재끝에 썼낸 생생한 묘사.

제목 '숨'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다음의 서술이 있다. "사람이 평생 몇 번이나 숨을 쉬는지 알아요?" (중략) "오억 번 정도 쉰대요" (중략) "근데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그렇대요. 작은 동물이나 큰 동물이나, 육식동물이나 초식동물이나...(후략)"(p.57) 이를 바탕으로 추론해 보면, 할머니와 미연을 통해 대립되는 남성성, 여성성을 초월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연이든, 할머니든, 똑같이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