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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가쿠타 미쓰요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작품성이나 일본내 평가에 비해, 가쿠타 미쓰요에 대한 국내반응은 미미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여러 작품이 꾸준하게 소개되고 있다. 처음 접한 가쿠타 미쓰요의 작품은 <대안의 그녀>,<사랑이 뭘까>였고, 이어 <인생 베스트 텐>,<죽이러 갑니다>를 읽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죽이러 갑니다>였지만, 이젠 더 이상 아니다.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바로 이 책을 읽었기에.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아홉편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다. 제목을 통해 예상했을지는 모르지만, 책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적은 분량이지만, 지금까지 읽은 가쿠타 미쓰요 작품중 최고다. 두고두고 아껴 읽고 싶을 정도로…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여행하는 책'과 '미쓰자와 서점'이다.
[여행하는 책] 집에서 나오 혼자살던 화자는 돈이 궁해 책을 헌책방에 판다. 평범한 책이었지만 헌책방 주인은 "자네, 이거 팔 생각이야?"(p.10)라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순간 고민했지만 화자는 결국 책을 팔고, 그 사실을 완전히 잊는다. 시간이 흘러 네팔로 졸업여행을 떠난 화자는 놀라운 일을 경험한다.
기묘한 이야기다. 마치 화자와 함께 여행하는 듯한 책,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놀랍다. 마치 책이 의지를 가진거 같지 않은가? 더군다나, 의미심장한 말을 했던 헌책방 주인도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풍긴다. 수많은 책을 봐왔기에 책을 보자마자 뭔가를 알아챈 것일까? 화자는 자기가 팔았던 책을 다시 읽으며, 자신을 돌아본다. '변했거나 변하지 않는'(p.19) 자신의 모습을. 그녀는 말한다. '이번에는 어디까지 나를 쫓아와 줄까. 그때 나는 이 책 안에서 어떤 나를 발견하게 될까'(p.20)라며…
[미쓰자와 서점] 한 문예잡지 신인상을 수상한 작가가 '미쓰자와 서점'을 회상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쓰자와 서점은 집 근처에 있던 책방으로 창고를 방불케 하는 평범한 서점이다. 서점 주인은 항상 책읽기에 몰두하던 할머니로 장사보다는 책자체를 좋아하는 분이었다.
미쓰자와 서점을 회상하게 된 것은, 책을 훔친적이 있기 때문.(p.127) 할머니는 항상 책읽기에 열중했기에 쉽게 훔칠 수 있었다. 이런 말까지 한다. "혹시 일본 전국에서 도둑질하기 쉬운 가게 베스트 10을 뽑는다면 틀림없이 미쓰자와 서점이 1위에 오를 것이다." 신인상은 수상했지만, 창작의 고통에 고민하던 화자. 다시 찿은 미쓰자와 서점에서 할머니의 손녀를 맞나, 새로운 의지를 다진다.
몇몇은 가쿠타 미쓰요의 자전적 이야기 같았다. 소설이 아닌 산문같은 느낌도. 다 읽고 나면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이야기하는 책, 멋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