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분만 더
하라다 마하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일 분만 더>는 저자가 작가로 데뷔하기 직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애견 '마치쿠'와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라 한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개를 좋아하고, 개를 키워본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쓸 수 없는 내용이다. 애견과 함께하는 생활이나 개의 생리, 특징 같은 것, 정말 생생하게 그려냈다.

<일 분만 더>는 패션잡지 에디터 '가미야 아이', 동거중인 카피라이터 '고스케'와 골든 리트리버 '리라'의 만남과 사랑, 이별을 그리고 있다. 취재차 펫 샵을 방문한 아이는 팔리지 않아 안락사 당할 위험에 빠진 리라를 만나게 되고, 그를 키우기로 한다. 첫 만남을 아이는 이렇게 회상한다.

"다나카의 품에 안겨 그 녀석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느 순간. 그 순간의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엄마의 뱃속에서 아이가 나오는 순간. 혜성이 수평선으로 떨어지느 순간. 눈부신 태양이 구름 사이로 살짝 비치는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밝고 정결한 힘, 그런 거룩한 것에 둘러싸인 기분. 나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p.58)
 
개를 키워 보았는가? 외출했다 돌아오면 개는 현관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왜 이제 오세요. 심심해 죽을 뻔 했다고요^^ 그래도 와주니 너무 좋은거 있죠' 하며 펄쩍펄쩍 사람 얼굴 높이까지 뛰어 오른다. 나란 존재를 이처럼 반겨주는 이가 또 있을까?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이럴 수는 없을 것이다. '리라' 역시 직장에서 돌아온 '아이'를 온몸으로 반겨준다. 문 앞에서 죽 엎드려서 아이를 기다렸던 리라.(p.35)

부엌에서 뭔가 하는 사람을 기대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p.36)이나, 사람들의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해내고 움추리는 것(p.79), 다가온 이별(비록 일시적이지만)을 감지하고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것(p.142)등 개의 생리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개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읽을 줄 안다. 뭔가 분위기가 험악하고 싸우고 있는거 같으면, 눈치를 보며 구석에 숨는다. 방학때 애완견 '댄디'와 함께 할아버지댁으로 공부하러 간 적이 있었다. 하루는 소음문제로 누군가와 다툼이 생겼는데, 그때 댄디는 혼자 방 구석에서 떨고 있었다. 그런 댄디를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개는 그런 존재다. '개만도 못한 인간?' 저건 욕이 아니다. 말 그대로의 사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 개보다 나은게 없다. 배신과 음모가 난무하고, 서로를 증오하는 인간들아, 함부로 개를 들먹이지 마라. 적어도 개들은 주인을 저버리진 않는다.

하지만 평생토록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는 모양이다. '꿈을 꾸는 것' 같이 황홀한 만남, 행복한 관계였지만, 아이는 힘든 직장생활과 성공의 문턱에서 조금씩 지쳐간다. 항상 집밖에서 배변하던 리라지만 일 때문에 늦는 아이를 기다리다 못해 똥을 싸버리고(p.83), 아이는 손이 저릴만큼 리라를 때린다.

꽃미남 작가 쇼의 노골적인 유혹과, 동거중인 고스케와의 갈등, 위기, 헤어짐. 하지만 리라는 항상 그녀 곁에 있었다. 떠나는 고스케에게 리라를 맡겼지만, 리라는 곧 아이에게 돌아온다. 하지만 이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중요한 프리젠테이션 도중, 리라가 위독하단 전화를 받은 아이. 갈등하지만, 편집장의 세심한 배려로 리라에게 향한다.

"내가 갈 때까지 리라는 반드시 기다려 줄 거에요. 지금까지 육년간 그 녀석은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었으니까요. 계속 기다리기만 했다고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하느님, 제발 한 시간만.(p.224) 아이는 한 시간이라 했지만, 그녀가 원한건 리라의 마지막 모습일 것이다. 단 일분이어도 리라의 마지막 모습을 함께 할 수 있다면 만족했으리라.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따위의 흔하디 흔한 말로 내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러고 싶지 않다. 남발되어 그 의미조차 희미해져 버린 단어때문에 감동조차 희미해 지는게 두렵다. 인간과 동물의 절절한 우정과 사랑. 이 가을에 어울리는 또 다른 러브스토리. 내가 할 말은, 꼭 읽어보라는 것. 이 하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