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자는 곳 사는 곳
다이라 아즈코 지음, 김주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한 편의 멋진 드라마를 본 듯한 기분이다. 재미있고, 신선하고, 감동까지 있다. 처음 '여자 오쿠타 히데오'란 소개글을 보고 피식 웃어 버렸지만, 아주 엉뚱한 수식어는 아니었다. 저자 '다이라 아즈코'의 작품은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 것이 많다. 이것이 무얼 뜻하는 걸일까? 그건 다이라 아즈코 작품이 가지는 '극적재미'를 반증하는 것이리라.

한 여자가 있다. 구인 정보잡지의 부편집장, 야마베 리오. 그녀는 돈벌이에만 집착하는 사장과 반복되는 업무에 실증을 느낀다. 감정을 주체못해 공사장 비계에 올라가지만, 내려올 방법이 없다. 그러던 그녀 앞에 나타난 한 남자. 비계공인 데쓰오는 그녀를 구해주고,(p.21) 운명적 만남은 시작된다.

또 한 여자가 있다. 가기야마 건설회사 회장의 딸인 가기야마 사토코. 데릴사위였던 남편이 회사를 이끌어 왔지만, 필리핀여자와 바람나 이혼당하고 쫒겨났다.(p.69) 갑자기 건설회사 사장역할을 해야하는 사토코. 남자들이 득실대는 건설업계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데쓰로의 소개로 리오는 가기야마 건설회사 입사하고, 건설초보 리오와 사토코의 건설업 도전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인상적인 것은, 건설업 전반에 대한 자잘한 이야기까지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장소장과 인부들의 관계, 건설업의 특징, 각 직책의 업부들, 저자가 이 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수집과 공부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일부 생소한 용어가 나오는데, 이는 각 장 앞에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처음 이를 모르고 '도대체 '비계'가 뭐지?'하고 어리둥절 했었다. '비계'는 건설현장에서 작업을 위해 철근구조물을 성냥쌓기 하듯이 쌓아올린 구조물이다.

두 여성의 좌충우돌 건설업 도전기라 해서, '혹시 <먹고 자는 곳 사는 곳>을 페미니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건 오버였다. 두 여성이 왜 건설업계로 투신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면 조금은 황당하다. 리오는 단지 한 눈에 빠져버린 데쓰오와의 만남과 관계를 위한 것이고, 사토코는 남편과의 이혼으로 어쩔 수 없이(심지어 자리보전하다 폐업하겠다는 생각까지 하니까) 떠 맡아 버린 것이다. 뭔가 사회적 의미를 부여할래야 할 수가 없다.

사장 취임후 공공부문의 구조조정과 인력개편을 단행한 사토코와 직원간 갈등은 중반 이후 스토리의 축이다. 실력은 있지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한 야마모토와 사토코는 갈등하고 결국 야마모토는 회사를 떠난다. 이미 다루오카등 핵심인력을 정리한 상태여서, 마땅히 맡길만한 인물은 없고, 결국 사토코는 리오에게 현장소장직을 맡긴다. 그녀의 가능성과 열정을 높이 산 것.

'먹고 자는 곳 사는 곳'이란 제목은 '집'을 뜻한다.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집. 그리고 그 집을 만드는 건축. 그렇기에 리오와 사토코는 힘든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은 어딘가? 그 어느 하나도 '건축'에 의해 탄생되지 않은 것이 있는가?

데쓰로만을 바라보는 리오지만, 이혼의 아픈 경험이 있는 그는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다. 또한 사토코는 회사정리와 합병의 유혹으로 힘들어 한다. 저자는 한층 희망적인 어조로 끝을 맺지만, 확실한 결말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희망이 가득한, 흥미로운 이야기, 추천한다.


* 후지TV에서 드라마로 만들어 졌다니 꼭 한번 찿아봐야겠다.

* 책 표지가 아주 귀엽다. 원서 표지도 저런지 궁금하다. 원서 표지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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