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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평점 :
* '햄릿 포에버' 집중 분석
일단 구성의 독특함이 눈에 띈다. 수사관계자의 질문과 피의자 이시봉의 답변이 이어지는 문답 형식. 기존 소설과는 차별화되는 '낮설게 하기' 효과를 꾀한듯 하다. 이런 서사구조는 일정한 한계가 불가피하지만, 이시봉의 자세하고 논리적인 답변을 통해 이를 극복한다. 하지만 또다른 문제가 제기된다. 이시봉은 극히 불안정한 상태이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구타도 서슴치 않는. 그런 그가 저토록 논리적으로 답할 수 있단 말인가? 의문이다.
줄거리를 살펴보자. 고교시절 본드흡입으로 소년원에 복역했던 이시봉은 출소 후, 차서화의 극단에 기능직으로 들어간다. 간간이 단역으로 무대에 서게 된 그는 차서화의 야심작 '햄릿 2000'에서 나름대로 비중있는 역을 맡지만, 계속되는 대본수정으로 그 기회마저 사라진다. 그러던 중 그는 다시 본드를 불게되고 현실과 환각속에서 햄릿을 만나게 된다. 그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시봉이 보았던 '햄릿과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난 그들이 이시봉의 또다른 자아라고 이해했다. 즉, '햄릿'은 이시봉의 숨겨진 예술적 능력과 자유의지의 표상이고, '아버지'는 이시봉이 내면 깊숙이 가지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의 표상이다. 현실에선 억눌려 있던 이들이, 환각의 세계로 넘어서는 순간 정면으로 부각된 것이다.
차서화란 인물을 좀 살펴보자. 차서화는 극단을 소유하고 있으며, '실력있는 연출가'라는 명성을 갈망한다. 환각속에서 이시봉과 햄릿이 소통하고 있음을 알고는 연극의 방향을 묻는 그녀의 모습은 집착과 광기의 안스러움을 자아낸다. '말해! 햄릿이 무슨 말을 했는지! 망령이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말하라고!'(p.71)
조심스럽지만, 이런 해석도 가능할 거 같다. '차서화와 극단, 이시봉을 취조하는 수사관서'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니며, 이시봉의 환각내지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시봉 자체가 환각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제3자가 상상속에서, 햄릿과 조우하는 이시봉이란 인물을 창조해 냈다는 것이다. '다 몽롱하기만 한 현실'이기에 해석의 가능성은 무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