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구판절판


처음 관아에 출두하라는 통지를 받았을 때, 그녀는 울컥 노여움이 치솟는 걸 느꼈다. 그건 약한 신분에 억울한 일을 당하고 소지를 올리며 드는 마음이 아니라 철모르는 아이가 아끼던 다관을 깨뜨리겠노라고 달려들 때 불쑥 치미는 공격적인 마음에 가까웠다. 밑에서 위를 우러러 분노한 게 아니라 위에서 밑을 아무르며 화를 냈다는 뜻이다. 그건 당연했다. 남녀간의 사랑을 최고의 덕목으로 떠받드는 종교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녀는 그 종교의 성녀와도 같은 사람이랄 수 있었다. 그녀는 사랑에 관한 모든 신비체험을 경험한 몸이었다. 그 눈부시도록 환한 빛, 섬뜩할 정도로 뜨거운 기쁨에 일단 노출되고 나면 세상으 다른 모든 것들은 빛을 잃고 식어버린다. 삶과 죽음마저도 넘어설 수 있다고 나서는 그녀의 오만함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했다.-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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