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은 왜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2월
평점 :
품절


<아랑은 왜> 묻혀 있는 작품이다.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평이 좋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과감한 도전, 실험정신, 아랑전설에 관심을 가지고 재해석한 시도, 인상적이다.

'장편소설'이라지만, '전설을 재해석해 소설로 구성하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해설서' 비슷한 느낌이다. 즉, '소설바깥 저자'가 대놓고 아랑전설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재해석하겠다고 설명하고, '박'과 영주가 등장하는 현실, 억균과 이상사가 등장하는 과거가 교차서술된다. '소설바깥 저자'가 치밀하게 전설을 해석하고 소설로 재구성하는 부분에 감탄했다. 소설 저술의 전단계쯤 될 법한 과정을 독자에게 가감없이 설명함으로써 강하게 몰입하게 한다.

현실과 과거가 교차되는 구성을 저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자. 길지만 그대로 인용하겠다.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런 식의 설정은 현대와 과거를 유기적으로 연관지어 묶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과거의 이야기와 현대의 이야기가 판박이처럼 똑같으면 유치할 테고 너무 다르면 도대체 뭣 하러 과거와 현대를 한 소설 안에 병치시켰느냐는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난점에도 불구하고 현대와 과거를 이렇게 대위법적으로 나란히,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배치하는 구성에는 상당한 매력이 있다. A-B-A-B-A-B-A-B. 이런 식으로 이어지게 될 과거와 현대는 대체로 느슨한 의미상의 연결을 유지하면서 서사적 화음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실패하면 불협화음을 빚어내겠지만.'(p.64,65)

유감스럽게, '박'과 영주가 등장하는 현실은 실망스럽다. 인물 캐릭터도 뻔할 뿐더러, 영주와 아랑을 오버랩 시키는 부분은 한마디로 억지다. 저자는 과거와 현실의 교차구성을 취했지만, 차라리 현실을 제외하고 과거에 집중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저자가 걱정한 '불협화음'수준을 넘어 소설의 가치를 저하시켜 버리고 말았다. '소설바깥 저자'와 과거,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과거'속에 등장하는 어사 조윤, 의금부 낭관 억균, 밀양 현령 이상사, 호장등등 인물들은 뚜렷한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용감하고 공명정대한 지방관으로 알려졌던 밀양 현령 이상사를 재해석한 것과 사건을 파헤치는 억균을 등장시킨 것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억균은 어사를 수행하는 종8품 관리이다. 그는 아랑 전설 내막에 호장을 비롯한 지방벼슬아치의 음모가 있음을 짐작하고 결국 진실을 밝혀낸다.

구구절절 늘어놓지는 않겠지만, 아랑을 윤관의 딸이 아닌 관기로, 아랑 살해의 주체를 통인이나 유모가 아닌 윤관으로, 그 근저에 제방붕괴 사실을 숨기기 위한 이상사와 지방벼슬아치의 음모가 있는 것으로 재해석한 것은 신선했다. 여러 지방의 다양한 민담을 살피고, 깊은 사유끝에 재해석한 것이라, 고개가 끄덕여 졌다. 진실은 누구도 모르지.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열려 있고.

김영하의 <아랑의 왜> 좋은 작품이다. 저자의 과감한 시도 하나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마음에 든다. (이를 바탕으로한 역사소설이 나온다면?? 생각만해서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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