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의 주파수
오츠 이치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쓸쓸함의 주파수>를 읽었다. 이로써 국내에 소개된 오츠 이치의 작품은 전부 읽은 셈이다. 큰 기대를 했지만 기대 이하였다. 수록된 네편의 단편보다, 뒤에 실린 '작가 후기'가 더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먹고 살기 위해' <미래예보> <필름 속 소녀>를 썼다고 고백한다. 더 나아가 억지로 쓰는 작품의 괴로움까지 토로한다. "마감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일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이제 죽음으로 사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캔 따개로 연 깡통이 옆에 있었다면, 뚜껑의 까칠까칠하게 잘린 부분으로 손목을 그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깡통은 없었고 나는 살아 남았다. 나는 위험했다. 어쨌든 그런 상태로 <미래예보>를 썼다."(p.206)

압박감 속에서 종종 위대한 작품이 탄생하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리라. 전체적으로 오츠 이치의 참신함을 찾아 볼 수 없었고 밋밋했다. 어쩌면 이는,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만약 다른 작가가 이 정도를 써 냈다면 '음…나름 괜찮네'라 했을 것이다.

앞 두 단편 <미래예보> <손을 잡은 도둑>은 별 특징없이 밋밋하다. <필름 속 그녀>는 전반을 지배하는 기괴한 분위기와 1인칭 시점의 서술이 인상적이었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결말 부분이 조금 아쉽다. 사고로 오른팔 일부의 감각만이 남은 남성의 이야기인 <잃어버린 이야기>는 분명 색다르고 주목할 만하다. 내면심리도 잘 부각된다. 하지만 역시 아쉽다. 읽고 나면 '이거 뭐지'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건데?' 란 생각이 드는 그런 작품이었다.

저자 후기는 인상적이었다. 지금의 내 심정을 그에게서 읽었다. 오츠 이치…내가 그에게 품었던 무한한 호감의 근원이 저것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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