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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킵 - 시간을 뛰어넘어 나를 만나다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스킵>은 흥미롭다. 17세 여고생에서 42세 고교교사로 시공을 초월하는 충격적 설정, 마리코의 심리와 적응과정, 철학적 사유까지, 단순한 흥미를 넘어서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꽤 두툼한 분량이지만 즐겁게 읽었다.
하지만 <리셋>과 동일한 의문이 들었다. 과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시간과 사람'이라는 현학적 주제일까? 하는 것. 사쿠라기 마리코의 고교교사 적응기를 이토록 비중있게 그릴 필요가 있을까? 저자는 거의 2/3이상(p.145 이하부터 끝까지)을 할애하고 있고, 더 나아가 학교축제 이야기나 시마바라 유리코(나코리)와 배구부의 갈등관계내지 서클내 문제까지 부각한다. 마리코는 마치 '고쿠센'의 앙쿠미처럼 학생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고교교사로 대활약한다.
<스킵>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과 사람'이란 거창한 주제는 한낱 설정에 지나지 않는다. 즉, 시공을 초월하는 설정을 바탕으로 '유쾌한 학원극'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저것이 꽤나 먹힌다는 점이다. 25년의 간극으로 말미암아 자기보다 나이많은 오빠,언니(마리코는 17세, 학생들은 18세)들을 가르쳐야 하는 고등학교 국어교사의 좌충우돌 적응기는 분명 인상적이었다. 만약 이 부분이 흥미롭지 않았다면 "뭐야, '시간과 사람'어쩌구 거창한 주제를 들먹이더니, 결국 그려내는건 이런거란 말야!"하면서 투덜거렸을지도 모른다.
'17세 여고생이 자고 일어나보니 42세 아줌마가 되어 있다'는 설정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말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고, 한낱 꿈이나 정신병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나름대로 이런 생각을 했다. '마리코는 분명 42세 고교교사 사쿠라기 마리코다. 자녀(미야코)와의 대화단절등으로 힘들어하던 그녀는 꿈을 꾸고 과거를 회상한다. 즉, 초반부 이치노세 마리코의 모습은 전부 그녀의 회상이란 얘기. 공교롭게도 17세부터 42세까지 기억이 사라지고 그녀는 시공을 초월한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녀의 착각이란 말인데, p.515이하에 등장하는 마유미의 의견과 거의 유사하다.
'시간과 사람'이라는 주제가 너무 빈약하게 서술됐다고 말했지만, 몇몇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25년의 세월을 매개하는 건 '마유미와 함께 적어 책사이에 끼워 두었던 빨간메모'이다. 이는 학교축제 바자회를 준비하던 한 학급에서 이를 발견한(p.425) 마리코는 큰 충격을 받는데...하지만 이것이 주제를 부각하는데 있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모호하다. 또한 사제지간을 넘어서는 닛타의 사랑고백(p.505)은 '혹시 닛타가 초반 등장하는 다나베의 환생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하지만 이 역시 확실치 않다.
<스킵>을 읽을땐 거창한 주제는 잊길 바란다. 편하게 부담없이 읽어라. 분명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기타무라 가오루의 놀라운 흡입력에 빠져 버릴 것이다.
* <리셋>에 비해 각주가 풍부하다. 몰입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거기다 뒤에 실린 감상평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