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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파운드의 슬픔
이시다 이라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지하철 안이나, 강의 중간중간 비는 시간에 읽어야지'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손에 잡았다. 감동했다. 이시다 이라가 풀어내는 사랑이야기는 '비현실적 환상'을 자극하지 않는다. 내가 겪었던, 혹은 몇시간 뒤에 겪을지 모르는 이야기다. 그러기에 한문장 한문장 공감해 버린다. 깔끔하고 아름답다.
얼마전 난, 이시다 이라의 다른 작품을 '미적지근한 연애소설'이라 표현했다. 사실 저때만 해도 추리, 성장소설, 연애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심스레 말해 본다. 이제야 작가 이시다 이라의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노라고. 조금씩 조금씩 작가를 느껴가는 이 행복한 기분.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런 구성이나 전체적인 느낌이 <슬로 굿바이>와 유사하다. 국내출간 순서와는 달리 <슬로 굿바이>가 먼저 출간되었다고 하니, <1파운드의 슬픔>을 나중에 읽은게 도리어 순서상 맞는게 되어 버렸다.
[두사람의 이름] 동거중인 '시바타 아사요' '마야마 도시키'. 사랑의 아픔을 경험한 이들은 헤어질 때를 대비, 자기 물건에 각자의 이니셜을 써 넣는다. 추한꼴을 안보이고 깨끗이 정리 하겠다는 것.(p.13) 그들은 친구에게 새끼고양이를 얻는다. 새침하고 똑똑한 표정의 고양이.(p.22) 이니셜 안 쓸 것이냐고 장난스럽게 묻는 도시키에게 아사요는 말한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 애는 가족의 일원이야! 도시키의 TV따위하곤 비교도 할 수 없다고!"(p.24) 새끼고양이는 이들 삶에 활력소가 되고 이들은 행복해 한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심장질환으로 고양이는 수술/안락사의 갈림길에 서고 결국 수술을 받는다.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아사요는 고양이 이름을 생각한다. (아사요가 왜 이 순간에 고양이 이름을 생각하는지 울먹이며 말하는 부분(p.38) 따스하고 인상적) 동물병원에서 돌아온 그들이, 서로 상대의 이니셜이 적힌 물건을 사용하고 음식을 먹는 장면은, 이들 관계의 놀라운 발전을 상징한다.
[누군가의 결혼식] 아유무는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서 당당한 커리어우먼인 웨딩플레너 유키를 알게 된다. 만나자는 글을 적은 명함을 전하는 아유무... 사흘 후에 유키에게서 연락이 오고(p.57) 그들의 데이트는 시작된다. 우연한 만남과 분위기 있는 데이트가 인상적인 단편이다. 20대 후반, 30대 초반 남녀라면 더욱더 공감하지 않을까?
[데이트는 서점에서] 책과 남자를 좋아하는 오리모토 지아키.(p.233) 물론 책 읽는 남자를 가장 좋아하지만 주변에 그런 남자는 많지 않다. 그러던 중 정밀기기 엔지니어 난조 다카오에 호감을 느끼고 서점데이트를 신청하는 지아키. 이들의 색다른 서점데이트는 인상적이었다. 책을 좋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꿈 꿔 봤을법한...
이시다 이라의 작품을 아직 읽지 않았다면, <1파운드의 슬픔>부터 읽으시길 권한다. 이시다 이라의 진면목은 연애소설에서 찿을 수 있을 뿐더러, 아름답기까지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