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굿바이
이시다 이라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시다 이라의 작품은 최대한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작가에 대한 호감이나, 외부적 요소를 배제한 채 작품만 응시하는 것이다. 이런 근저에 무었이 있든 작품 감상면에서는 긍정적이다. <슬로 굿바이> 10편의 단편이 모인 이시다 이라의 첫 단편집이다. 달콤 미적지근한 이시다 이라식 연애소설.

화자를 통일하고 중간중간 약간의 장치를 한다면, 10편의 단편은 한편의 장편으로 읽을 수 있다. 그 정도로 <슬로 굿바이>를 지배하는 느낌은 유사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인터넷을 소재로 채용한 작품'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You Look Good To Me'와 '낭만 홀리데이'가 대표적.

[You Look Good To Me] 인터넷 쇼핑몰 대화방에서 만난 나(대화명 오스카)와 미운 오리새끼. 채팅창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의 대화는 그대로 옮겨진다. 미운 오리새끼는 '나는 못생겼으니까'라는 말을 반복하는 외모 컴플렉스 소유자이지만, 오스카는 그런 그녀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굉장히 이론적인 타입의 열정가 같았다. 외모에 관해서는 중증의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적어도 인터넷 상에서 이야기해 본 바로는 상당히 괜찮은 느낌이었다. 반응도 빠르고, 머리도 좋고, 노골적으로 여성스러움을 내세우지도 않는다.'(p.72,73) 인터넷상으로 만나, 이야기 나누고,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상당히 공감가는 내용이다. 또한 외모 컴플렉스를 가진 인물이란 설정까지.

오프라인 미팅에 참가한 오스카는 미운 오리새끼를 기다리지만, 그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약간의 실망을 한다. 파티 시작후 한 시간 반쯤 지나 미운 오리새끼는 모자를 눌러쓰고 모습을 드러내지만, 짓굿은 장난때문에 울상이 되어 자리를 떠난다.(p.80참조) 오스카는 자기 얼굴을 보고 실망했을거라는 미운 오리새끼의 말에 자기는 '예쁘지 않은 여자 마니아'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을 키워간다.

채팅창에서 만나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은 진부하지만, 이시다 이라는 공감가는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난 못생겼다'고 자학하는 캐릭터의 심리와 그런 그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주인공. 그녀는 진실한 사랑속에,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거듭난다. 사랑 받고 있다는 확신, 그처럼 아름답고 확실한 묘약이 있을까? 부끄러워 말아요. You Look Good To Me.

[낭만 홀리데이] 인터넷 게시판에서 확인한 한 메시지. '나와 <로마의 휴일>을 하지 않으시렵니까? -유키'(p.188) 미즈키는 '답글쓰기'를 클릭하고 좀 더 영화에 대한 이야기나 연출계획을 말해달라고 얘기한다. 곧 둘은 메일을 주고 받는 사이까지 발전한다.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던 미즈키는 오프라인에서 유키를 만나고 싶다고 하고, 결국 이들의 첫데이트는 8월 첫 주 금요일로 정해진다.(p.185참조) 그리고 만나게 되는 두사람...

미즈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 앞에 있는 여성은 '진짜 유키' 즉, 그와 메일을 주고 받았던 상대는 따로 있던 것이다. 누굴까? 이 부분까지 말하지는 못하겠다. 읽어보시길. 진짜 유키의 말을 들은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배신감? 분노? 상당히 공감가는 내용이다. 우리 주변에도 저런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인터넷의 익명성을 활용한.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미즈키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고, 또 멋졌다. 자신을 속인 상대를 찿아가 자기가 대화를 나누던 미즈키라며 그녀를 이해하려 한다. 사실 그 역시 약간의 거짓말을 했으니...또한 마지막부분에 이어지는 '나와 <프리티 우먼>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p.213)라는 진짜 유키의 반응도 귀여웠다. 대신 나가 만나보곤 그에게 빠져버린 그녀. 어쩌면 침착하고 다정한 그의 반응에 반한건지도…

<슬로 굿바이>를 읽으며 한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그가 창조한 캐릭터속에서 또다른 날 발견했다는 것. 하나와 세이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스기모토, 채팅창에서 만난 여성과 사랑을 꿈꾸는 오스카. 어느새 소설속으로 몰입해 버렸다. 가만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그려낸 저자의 능력을 다시 봤다. <슬로 굿바이>, 이 가을에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다. 지금 사랑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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