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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캘린더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가와 요코의 작품은 일단 믿음이 간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읽고나면 강한 여운이 남는다. 마냥 잘해주고 싶은 후배같다고나 할까.
아쿠다가와 상 수상작인 <임신 캘린더>는 세편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다. 임신한 언니의 변화를 관찰하는 동생의 모습이 핵심내용이다. 임신한 여성이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임신이란게 얼마나 여성들에겐 두려움이며, 고통인지 조금이나마 알았다. 마냥 축복인게 아니었다.
'나'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언니의 모습은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냄새가 얼마나 끔찍한건지 너 아니? 피할 수가 없어. 가차없이 파고든잔 말야. 냄새가 없는 데로 가고 싶다. 병원의 무균실 같은 곳. 거기서 내장을 전부 꺼내서 깨끗해질 때까지 증류수로 씻었으면 좋겠다."(p.32) 냄새에 저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언니. '나'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언니는 불쑥 얼토당토않은 것을 먹고 싶다고 하는데, "황매화색 과육이 얇은 유리 조각처럼 겹겹이 쌓여 있고,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비파 셔벗. 비파 셔벗이 먹고 싶다구." "비파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 비파의 부드럽고 얇은 껍질과, 금빛으로 빛나는 솜털, 옅은 향을 바라고 있는 거라구. 게다가 그걸 바라는 것은 내가 아니야. 내 안에 있는 임신이 바라는거지. 임신이. 그러니까 나도 어쩔 수가 없어"(p.50) 정말 떼를 쓰는 어린아이가 되버린 언니. 우리가 드라마상으로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입덧이 끝나고 언니의 식욕은 갈수록 왕성해지고, 어느새 몸무게가 13kg이나 는다. '나'는 언니를 위해 그레이프프루트 잼을 만든다. 만드는 즉즉 먹어치우는 언니. 그리고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
"이 안에서 제멋대로 쑥쑥 자라고 있는 생물이 내 아이라는 것이 도무지 납득이 안 가. 추상적이고 막연하고, 그런데도 절대적이어서 도망칠 수 없어. 아침에 눈을 뜨기 전, 깊은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도중에, 입덧과 M병원과 이 남산 같은 배, 그런 것 모두가 마치 환영인 것만 같은 순간이 있어. (중략) 내 안에서 나오면, 싫든 좋든 내 아이잖아. 선택할 자유가 없다구. 얼굴 반쪽이 뻘겋게 멍들어 있든 손가락이 죄 들러붙어 있든 뇌가 없든 샴쌍둥이든....." (p.6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