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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모자이크 살인
줄리오 레오니 지음, 이현경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먼저 뒤에 실린 '줄리오 레오니'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가 왜 '단테'란 인물에 관심을 가졌고 탐정으로 재창조했는지, 그의 마술에 대한 관심등, 줄리오 레오니의 작품세계와 재창조한 단테에 대해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사실, <단테의 빛의 살인>을 읽고 단테시리즈의 단테는 신곡을 쓴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줄리오 레오니가 '창조'한 인물인 줄 알았다. 기존에 알고 있던 시인이미지의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오해에 대해 줄리오 레오니가 언급한 부분이 있다.
"약간 과장되게 표현된 면도 있지만 실제 단테는 그랬습니다. 그를 기이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들 모두가 단테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는 도외시한 채 학교에서 배운 단테의 이미지만을 떠올리기 때문이지요."(p.478) 저자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테는 저자의 말대로 학교에서 배운 단테일 뿐이다. 그런 한정된 이미지를 기준으로, 저자가 전문적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재창조한 단테를 재단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줄거리를 살펴보자. '산 귀다 성당'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사체는 머리와 목주위가 석회로 뒤덮힌 잔혹한 모습.(p.34) 행정위원인 단테는 코무네 수비대장 '바르젤로'와 함께 수사에 나서고, 피해자는 건축가이자 모자이크 기술자인 '암브로지오'임과, 피해자가 죽기 전에 남긴 것으로 보이는 'Ⅲ-COE' 란 글자(p.45)를 확인한다. 모자이크와 사건의 관련은? 피해자가 남긴 다잉메시지의 의미는? 이어 단테는 약재상 '테오필로 스프로비에리'를 찾아 기묘한 약을 처방받는데, 테오필로는 산 귀다 성당의 재건축을 지원하는 스투디움 교수 일원으로 단테와 '셋째 하늘' 멤버들을 연결 해주는 인물이다. ('셋째 하늘'의 자세한 의미는 p.83 참조하시길) 그는 이야기 초반 가장 주목받는 약간은 의심스러운 존재.
일단, 두가지를 살펴보고 가자. 첫째는 '단테의 성격'이다. 이야기 속 그는 상당히 권위적이고 다혈질적이다. 약간은 건방지게 행동하는 병사에게 욕설을 퍼붓고 따귀를 때리는 모습(p.68), 이방인에서 저급한 욕설을 퍼붓는 모습(p.85), 적선을 구걸하는 거지에게 욕설을 퍼붓고 구타하는 모습(p.121), 추기경과 언쟁하고 칼까지 겨누는 모습(p.227-231), 병사들에게 저급한 욕설을 퍼붓는 모습(p.427)등등 무뢰배가 따로 없다. 위 나열한 것은 내 기억에 남았던 극히 일부분이다. 다혈질적인 몰라도, 행정위원이란 직위를 이용 권위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은 상당히 실망이다. 단테는 왜 저런 성격으로 묘사된 것일까? 단테가 살던 당시에는 저런 행동이 일반적이고 당연한 것이었을까?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특이한 것은 '단테의 빛의 살인'에서는 저런 권위적이고, 욕설을 퍼붓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는, '단테의 건강'이다. 단테는 심한-거의 앞이 안보이고 쓰러질 정도-편두통으로 고생하고 있다.(p.151) 그가 약재상 '테오필로'를 찾아간 것도 편두통 때문이었다. 도대체 단테를 괴롭히는 편두통은 어떤 병 때문인가? 그렇다면 역사속 단테는 실제 편두통에 시달렸는가? 읽을 당시에 난 삼국지의 조조처럼 단테가 뇌종양을 앓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단테에 대한 관련자료를 살펴보니, 그는 '간질환자' 였다고 한다. 그리고 간질의 증세중 하나가 편두통. 한마디로 그는 간질때문에 편두통에 시달렸던 것이다. 천하의 단테가 간질환자였다니, 조금 놀라운 사실. 다른 측면에서 이 부분은 저자가 단테를 얼마나 정확하게 재창조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단테가 실제 고생했던 질환까지 재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다시 이야기속으로 돌아와 볼까. 단테는 부검결과 확인차 시체를 안치했던 '미제르 코르디아'병원을 찾고, 부검의로부터 시체 가슴에 긁힌것 같은 문양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 문양은 불길한 5각형 형태의 다섯줄.(p.213) 과연 저 문양이 단서가 될런지. 이어 단테는 무희 '안틸리아'와 사랑에 빠지며, 또 특유의 욕설을 퍼부으며^^ 사건을 파헤쳐 간다. 어찌보면 너무나 인간적인 단테.
'빛의 살인' '신곡 살인'과 이 작품을 비교해 보자. 사실 '신곡 살인'은 줄리오 레오니의 작품이 아니지만, 단테라는 교집합이 존재하기에 비교해 볼만 하다. '신곡 살인'의 주인공은 단테가 아니라 흑란이라 불리는 첩보원 '피에트로'이다. 단테와 피에트로...둘다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역할이지만, 행정위원이라는 안정적인 지위의 단테와는 달리 피에트로는 죄인 신분으로 사건을 해결중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마음에 안들면 욕설과 구타도 서슴치 않는 단테와는 달리 피에트로는 온건하다. 조심스럽다고나 할까. 두 주인공 중에 누구에게 더 호감이 가냐고 묻는다면, 난 피에트로를 선택하겠다. 편두통에 시달리는 다혈질의 단테보단, 뜨거운 열정과 뛰어난 검술, 멋진 외모를 가진 피에트로가 좋지 않은가? (하지만, 고개를 돌리고 조금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우상화되고 완벽하게 묘사된 피에트로보다, 너무나 인간적인 단테에게 끌리기도 함. 여러번 읽어본 후 판단해야 할 듯)
'모자이크 살인'은 줄리오 레오니의 출세작이고, '빛의 살인'은 그 이후 작품이다. 하지만 난 '빛의 살인'을 먼저 읽었고 이는 먼저 언급했다. 두 작품의 우열을 가린다면 어떻게 될까? 이건 조금 어렵지만, '모자이크 살인'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전체적으로 큰 차이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속도감 있는 이야기의 전개나 군더더기 없는 설정에서 '모자이크 살인'이 조금 더 나았다.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 <루니타>는 이 작품을 "<장미의 이름>보다 환상적이며, <다빈치 코드>보다 지적이다"라고 평했다 한다. 난 <장미의 이름>을 읽지 않아 더 환상적인줄은 모르겠으나, <다빈치 코드>보다 지적인 것은 분명하다. 중세에 대한 깊은 지식, 단테에 대한 풍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추리소설의 수준을 뛰어 넘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더군다나 속도감있는 이야기전개와 철학적 사유까지 보여주는 결말은 충격 그 자체다. 여름의 막바지, 단테와 함께 사건현장을 누벼보는 것은 어떨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