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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
마쓰오 유미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 스포일러 있을지도
<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 제목만 보면 연애소설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니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다. 독특한 것은 '죽임을 당한 피해자가 유령으로 등장'하는 독특한 설정을 추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연애소설이란 말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닌게, 피해자와 그녀를 돕는 주인공사이 생사를 넘나드는 사랑도 일정부분 부각된다. 요컨데, 어느 한 장르로 이 작품을 규정짓는 것은 무리.
'누마노 와타루'. 이모인 스미코가 미국으로 장기출장을 가게 되자, 와타루는 비게 된 맨션으로 이사한다. 스미코가 제시한 조건은 하나, 자기가 키우던 고양이(시로,토라)를 돌봐 달라는 것. 넓은 맨션, 공짜나 다름없는 집세, 와타루는 행운을 사로잡은 듯 즐거워 한다. '미나미 시나가와 맨션'에서의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와타루는 비오는 날이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 시로,토라의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낀다. 저런 위화감은 정체불명의 여자 웃음소리와 함께 현실이 되는데, 이 맨션엔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처음부터 확실히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난 유령이에요. 그런 게 된 것 같아요. 3년 전에 이 맨션에서 죽었고, 그랬는데도 여기 이렇게 있으니까요."(p.36) 그녀의 이름은 '오다기리 치나미', 직장상사인 '모리야마 카오루'의 부탁으로 이 맨션에 살고 있었다. 그럼 그녀는 왜 죽었을까? 왜 유령으로 떠도는 것일까?
갑작스러운 자살충동(도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자살충동을 느꼈는지, 그녀는 비밀이라고 말하길 거부한다)을 느낀 그녀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살을 위한 청산가리 캡슐을 구하고, 곧 바로 자살을 시도한다. 샴페인에 청산가리를 넣어 마시려는 것. 하지만 천장 선풍기 날개위에 올라간 샴페인 마개를 보고, 다른 이들이 비웃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는 소파에 올라가 그것을 치우려 한다. 하지만 균형을 잃고 넘어져 머리에 충격을 받고 기절한다.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 독이 들어있던 삼폐인을 입어 넣어 살해 했던 것.(p.60 참조) 당시 그녀는 이미 유서까지 써둔 상태였던데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청산가리를 구한 사실이 밝혀져, 자살로 수사는 종결된다. 하지만 그녀는 자살을 시도는 했지만, 중간에 포기하고 삶의 의욕을 다졌었다. 누군가가 자살하려던 정황을 이용해 그녀를 살해한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 그녀는 와타루에게 사건의 전말과 진범인을 잡아 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서 잠깐, '치나미'는 왜 '와타루'에게 도움을 요청한 걸까? 살해 당한지 지금까지 근 3년여간 이곳을 거쳐간 다른 이들에게는 도와달라는 하소연을 하지 않던 그녀가 말이다. 난 이렇게 생각했다. 치나미가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은 와타루에게 신뢰감을 느낀 것이라고. 잘 살펴보면 둘 사이엔 많은 공통점이 존재한다. 일단, 둘은 나이가 비슷하고, 독신 회사원이라는 점(이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또한 누군가의 부탁으로 '미나미 시나가와 맨션'에 살게 되었다는 점까지 같다. 아무튼 와타루는 그녀를 돕기로 하고 사건을 추적한다.
치나미는 유령임에도-그것도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그리 공포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치나미와 와타루의 기묘한 동거(?)는 마치 치나미를 신혼부부 새댁처럼 느껴지게 한다. 서로간의 공동규칙을 만들고, 호칭도 달리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이들.(p.74이하,133이하 참조) 점점 마음을 열고 생사를 뛰어넘는 애정을 공유한다. 아, 한가지 이야기하지 않은게 있다. 치나미는 비오는 날만 모습을 드러낸다. 초반 비오는 날 고양이들이 평소와는 다른 반응을 보인건 바로 저런 이유 때문이었다.
와타루는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치나미의 증언(보통의 경우 도저히 알 수 없는)을 토대로 사건해결을 시작한다. 치나미는 두가지 의문을 제기(p.78)한다. 첫째, 어떤 사람이 했던 이상한 말. 둘째, 사건현장에서 사라진 어떤 것.
치나미의 첫번째 문제제기는 직장상자 모치즈키를 겨냥하고 있다. 모치즈키가 "괜찮아. 여자 쪽도 오늘밤 안에 결말이 날 것 같으니까"라는 말을 한 것을 자기가 들었고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모치즈키의 횡령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이것을 은폐하기 위해 모종의 수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첫번째 용의자의 등장. 두번째 문제제기는 '미나미 시나가와 맨션'에 걸려 있던 그림과 관련이 있다. 사건 직후 거실에 걸려있던 그림액자가 사라진 것 같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럼 사건의 동기는 고가의(혹은 고가로 추정되는) 그림 때문인 걸까?
저런 치나미의 문제제기는, 사건조사에 착수한 와타루를 통해 하나씩 실마리가 풀리지만,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조금은 황당하다고 해야하나. 이 부분을 보며, 마쓰오 유미가 소설의 미스테리 측면은 크게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생각도 해봤다. 피해자에 의해 제기된 두가지 의문은 문제해결에 있어 핵심임에도, 너무나 허무하게 너무나 빨리 해소된다. 또한 마지막 사건의 진실, 이것도 조금 갑작스러운 면이 있다. 저자는 미스테리를 재료로, 인간관계 내지 사랑을 요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런지.
몇가지 의문이 있다. 일단, 도대체 왜 치나미는 자살을 기도했을까? 물론, 발레를 했던 치나미는 극단의 공개오디션에서 떨어져 자살을 기도했던 것이라고 말한다.(p.204) 하지만 와타루는 납득하지 못한다. 나 역시 그렇다. 왠지 끝까지 비밀을 간직하고 싶어하는 듯한 모습. 둘째, 와타루는 직장인이다. 직장에 얽메인 그가 사건해결을 위해 탐정처럼 조사를 한다는 것은 여건상 맞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시간여유가 있단 말인가? 퇴근후에 조사를 한 것일까? 잠시 휴직했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비 내리는 날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치나미, 그런 그녀를 이해하고 돕는 와타루. 그들은 '멋진 커플'이었다.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기에 더욱 서로를 이해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비 내리는 날 특유의 촉촉함과 왠지 모를 쓸쓸함이 더해져, 소설은 한층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와타루가 차근차근 사건의 진실로 접근해 가는 모습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하나의 미스테리 작품으로 봐도 상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듯 하다. 비 내리는 날에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