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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다나다 군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이건 꿈이다. 이건 전부다 '다나다'의 꿈일 뿐이다'
<사랑하는 다나다 군>을 읽는 내내 되내었던 말이다. 마구로 사장도, '마바'도, '호테이 가드'들도, 비현실적이고 황당해서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비현실적이기에 독특한 재미가 있었고, 비현실적이기에 마음껏 상상의 세계를 누빌 수 있는 '다른 차원의 보편성'을 느꼈다. 모든 것이 반복되는 일상처럼 똑같이 굴러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다나다 군' 그는 신장 189센티미터, 체중 70킬로그램, 올해 29살이다. 지도회사 경리과에 근무하고 있으며, 심각한 '방향치'이다.(p.10참조) 이후 이야기는 '이상한 경험'을 한 다나다 군의 회상으로 진행된다. 만나던 여성의 헤어지자는 통보, 키우던 장수풍뎅이의 죽음, 그는 그의 애마 '론포군'과 함께 기분전환 삼아 드라이브 한다. 이것이 저 '이상한 경험'의 시작. 그는 낮선 거리로 가게 되고, 보게 되는 서커스단 같은 이상한 사람들과(p.16), 운명의 여인.(p.20)
다나다는 낮선 거리에서 보게 된 저 여인에게 강한 호감을 느끼고 그녀를 따라 간다. 처음 그녀를 본 다나다가 그녀를 어떻게 묘사하는지 살펴볼까. '그것은 하나의 빛인 동시에 걷고 있는 한 여자의 뒷모습이었다. 내가 여자와 빛을 잘못 본 것은 아니다. 내 눈에는 번화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나 자동차, 가게 간판 중에서 단지 한 사람, 그 여자만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p.20) 홀로 반짝반짝 빛나는 이성, 저런 경험은 누구나 한번을 해 봤을 것이다. 한마디로 다나다는 콩깍지 씌인 상태^^ 그 여인은 호텔로 보이는 건물로 들어가고, 다나다는 용기를 내 그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다나다를 기다리는 것은 '호테이 가드'라는 이상한 경비원들이었다. 그들과 실랑이 하던 다나다는 '게스트 룸'이라 칭해지는 감옥에 갇힌다. 철창 안엔 다나다 외에도 이치이,슈운조란 이들이 있었고, 이들을 통해 이 호텔이 '호테이 호텔'이란 것, 그 여인를 둘러싼 소문들, 호테이 호텔의 사장 마구로에 대해서 듣게 된다. 이 곳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호테이 호텔'은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결정체이다. 다나다가 한 여인을 쫒아 이 곳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의 '이상한 체험'은 본격적인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한 평론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이 작품을 비교했다고 하는데, 공감이 간다. 하지만, 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제대로 읽은 적이 없어서 줄거리밖에 모른다. 양자를 비교해 보는건 분명 흥미로운 일이나 지금은 무리.
다나다가 반해버린 그 여성은 식사를 가지고 오고, 다나다는 갑작스러운 만남에 놀란다. 그녀의 이름은 '마바'. 다나다는 마바에게 자기가 이 곳에 온 이유를 구구절절 이야기하며, 그녀에게 사랑고백을 하는데, 마바의 반응은 정말 특이하다. '(사귀고 싶다는 다나다를 보고) 마바 씨는 (역시)라는 느낌으로 두세 번 작게 끄덕인 후, 변함없이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 그럼 사귀어보도록 하죠."'(p.122) 처음 본 사내에게 사랑고백을 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사귀자는 마바. 어리둥절한 것은 나만이 아니다. 다나다 역시 어리둥절해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마바가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마바의 입을 통해 p.210에서 설명된다. 참조하시길)
이치이와 슈운조는 마바를 둘러싼 소문을 다나다에게 말해주는데(p.127~135), 소문속 그녀는 결혼을 약속한 나이지리아(혹은 알제리) 출신 연인을 전쟁으로 잃고 괴로워하는 여인, 호테이 호텔의 사장 마구로의 정부. 과연 그녀를 둘러싼 소문은 맞는 것일까? 과연 그녀의 정확한 정체는 무었이란 말인가?
사실, 이 작품을 논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누누이 이야기한 등장인물들이나 배경뿐 아니라, 결말로 이어지는 스토리라인 자체가 몽롱한 것이다. 특히, 다나다의 사랑을 과학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마구로가 감행한 은밀한 피검사, 마구로와 마바의 관계등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강한 비판의 대상이다. 도무지 설득력이 없다. 참 재밌게 읽었던 이 책의 리뷰를, 거의 하루종일 끙끙대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잡고 있던 이유는 저런 간극 때문이다. 하지만, 논리따위는 치워버리길 바란다. 그래야 이 작품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내가 이 이야기가 전부 꿈이라 생각했던 것 역시 저런 이유 때문이다. 저자는 등장인물들(마구로,이시이,슈운조등)이 칠복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극히 초현실적인 장면(p.348)을 마지막에 보여주면서도, 마바와 다나다의 관계는 깨버리지 않는다. 자기가 이룩한 세계를 꿈으로 날려버리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한 여자를 진정 사랑했던 다나다와 그 사랑을 이해해 준 마바. 그들의 사랑은 그 어떤 몽롱함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다나다가 처음 그녀에게서 본, 강한 사랑의 빛처럼.
* 역자는 역자후기에서 우리말 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원작에 충실한 번역을 위한 리스트를 소개한다. '1.모리스 라벨의 오페라 <어린이와 마술> CD감상하기. / 2. 평론가가 비교했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다시 보기. / 3. 루이스 캐럴 관련 도서 읽기. / 4.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을 찿아보기. / 5. 요시모토 바나나처럼 주인공 다나다를 사랑하기.'(p.355)
*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이 책은 '로린 마젤이 지휘한 모리스 라벨의 오페라 <어린이와 마술>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 위해 만들었다는 이 오페라의 특징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세계에서나 나올 법한 특이한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중략) 이 책은 지금까지 제가 쓴 소설 중에서 가장 '음악'을 의식하며 쓴 작품입니다."(p.356) 하지만 음악에 대한 나의 식견부족인지는 몰라도, 저것이 소설속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명확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초현실주의를 상징하는 도구일까, 마바의 사랑을 구체화하기 위한 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