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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돼지를 프로듀스
시라이와 겐 지음, 양억관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학원가를 배경으로 하는 성장소설내지 학원소설(?)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누구나 한번을 겪어 봤을법한 친근한 이야기와 캐릭터, 몰입도에서 차원이 다르다. <들돼지를 프로듀스>는 왕따당하는 전학생 '고타니 신타'(일명 노부타)를 왕따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슈지'의 대작전이 기본 축이다. 한마디로 내가 좋아하는 학원, 성장소설.
화자는 친구 많은 인기인 '슈지'. 그는 밤마다 귀여운 '나미'에게 문자공세를 받고, 커플로 공인된 '마리코'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 슈지와 함께하는 고정멤버 모리나카, 호리우치. 이런 그들에게 한 전학생이 찿아든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모두들 큰 기대를 한다. 하지만, 전학생은 물먹은 미역같은 머리칼을 가진 돼지. 그 돼지는 아주 자연스럽게 왕따가 된다. 이런 돼지를 안스럽게 여긴 슈지는 돼지 왕따구출 작전을 시작하는데...
먼저, 들돼지(노부타) '고타니 신타'라는 인물을 살펴보자. 그는 뚱뚱한 돼지에다, 먹은 미역 같은 머리를 가졌다. 거기다 조폭스타일 말투까지. 그외 조건에 대해서 저자는 언급하지 않지만, 저런 외모만으로도 그는 왕따의 조건 충족한다. 학창시절 반마다 꼭 저런 아이들이 한명씩 있다. 그들은 뚱뚱한 몸 때문에 놀림받았고, 항상 시무룩한 표정으로 지냈다. 적어도 내 기억속엔 그렇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왕따에서 구해주기 위해 프로듀스를 하던 친구가 과연 있었던가? 돌이켜 보면, 회의적이다. 그들은 언제가 괴롭힘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럼 과연 슈지는 왜 들돼지를 프로듀스한 것일까? 왜 그를 도와준거지? 프로듀스의 시작은 이렇다. 옆반 마에다에게 얻어 터지는 들돼지를 슈지가 꾀를 내 구해주자, 들돼지는 도와 달라고 애걸한다. "나를......나를 제자로 받아 주세욧!!"(p.79) 슈지는 오랜 생각끝에, 그런 그를 음악프로듀스처럼 프로듀스하기로 결심한다.(p.88,89 참조) 왜 일까? 왜?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는 왕따를 도대체 왜?? 글쎄...이 부분에 대한 슈지의 심정과 내면심리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난 느꼈다. 슈지가 의외로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란 것을.
또한 약간 시각을 비틀어보면, 슈지의 행동을 들돼지에 대해 가지는 '상대적 우월감의 발로'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자신의 제자가 되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친구도 없고, 살만 뒤룩뒤룩한 이 돼지를 프로듀스함으로써 자신의 우월감을 충족하고, 자신의 프로듀스가 성공해 가는 과정을 통해 만족감을 얻었으리란 것이다. 프로듀스 초반(들돼지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친근감을 유도한)이 어찌보면 들돼지에 대한 또다른 가학임을 고려해 본다면 이것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비슷한 또래들의 학교생활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처음 언급한 학원소설의 묘미는 저런 것이 아닐까? 이미 학교를 떠난 이들에게 학창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상기시키고, 학창시절에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소설속 인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재미. 개인적으로 부러웠던 것은, 남녀공학 고등학교와 마리코가 준비해 온 도시락을 단둘이 오붓하게 먹는 슈지였다. 난 중,고등학교를 모두 남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저런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고등학교때 여자친구가 싸온 도시락을 같이 나눠 먹었다면, 얼마나 학교다닐 맛이 났을까? 부럽다. 슈지^^
슈지의 프로듀스에 따라, 들돼지는 삭발을 하고, 교복바지를 일부러 뜯어지게 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불량학생의 부하가 된다. 이런 일련의 왕따탈출 프로젝트는 성공의 성공을 거듭하고, 들돼지는 조금씩 학급의 일원으로 녹아든다. 프로듀스의 절정은, 들돼지가 할 때는 하는 강한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정의의 사도 프로듀스'. 불량학생을 고용해 여자를 치근거리게 하고, 들돼지가 나서서 여자를 구하는 다소 고전적인 방법.(p.167) 이는 큰 성공을 거두지만, 나중에 이것이 독이 된다는 것을 슈지는 알았을까?
왕따에서 벗어나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는 들돼지. 하지만 그를 구해낸 슈지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불량배들에게 구타당하는 친구 모리가와를 도와주지 않았다는 원망을 받은 것. 사실 슈지는 구타당하는 장면을 보긴 했지만 그가 친구인 모리가와인 줄을 몰랐는데...하지만 친구인 모리가와는 슈지를 비난한다. 친한척 우정을 가장하지만, 정말 위급할 때는 모른 척하는 그런 놈이라고. 하나 둘 멀어져 가는 친구들. 그와 함께 도시락을 먹던 마리코는 들돼지에게 위로받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까지 목격하게 된 슈지. 그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게 과연 무었이란 말인가?
전후사정이 명확하게 서술되지는 않지만 슈지는 새로운 환경을 선택했다. 전학을 간 것. 그는 새로운 프로듀스를 꿈꾼다. 들돼지를 위한 프로듀스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프로듀스를. 이제 그가 전학생이 되어 무적의 탤런트 슈지가 되기 위한 프로듀스를. 그의 새로운 도전에 나까지 활력이 솟아난다. 힘내라! 슈지!
저자 '시라이와 겐'의 문체는 재기발랄하고 개성있었다. 그의 재기발랄함이 있었기에 쉽게 이야기속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 또한 내 또래 작가라 그런지, 공감가는 문장도 많았다. 일본에서 소설을 바탕으로 TV드라마화 되었다는데, 찿아서 꼭 한번 봐야겠다. 포복절도 왕따구출 프로젝트, 그런 그들의 성장기.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