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의 죽음 랜덤소설선 18
이재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이재웅. 난 그에게 설명할 수 없는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냥 마음에 든다면, 너무 무책임한 말일까? 장편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을 읽었다. 그가 펼쳐내는 이야기는 신인급 작가가 펼쳐보일 그것이 아니었다. 인생의 힘든 시기에 접한 책이라 더욱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후로 작가 이재웅의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그가 신작 <럭키의 죽음>으로 돌아왔다. <럭키의 죽음>은 9편의 단편이 실린 그의 첫 소설집으로, 그에게 품고 있던 어렴풋한 호감을 확신시켜 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모의 사진] [럭키의 죽음]이었다.

[고모의 사진] 어머니에게 걸려 온 전화 한통. 어머니는 화자인 '나'에게 '연지평 고모가 찿아 왔었으며, 그녀가 시골노인들에게 수의를 팔고 다녔다'고 이야기 한다. 어머니는 특히 그녀가 노인들의 자녀들까지 동원해 수의를 팔려고 자녀들 전화번호를 묻고 다녔는데, 어쩔 수 없이 '나'의 전화번호도 알려 줬음을, 그리고 요령껏 처신하라고 신신당부 한다.(p.85참조)

'나'와 아내인 '현화'는 오랫만에 자신들을 찿을지 모르는 '연지평 고모'를 맞을 준비를 하고, 새삼스레 그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올듯 안올듯, 마침내 한 노파가 방문을 하는데, '나'는 늙은 연지평 고모의 얼굴을 좀처럼 생각해 내기 어렵다. 아내 '현화'는 그를 연지평 고모라고 생각하고 살뜰하게 맞는데...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의 단절이란 문제의식을 깔고 있다. 어릴적 자신을 귀여워 했던 친척을 이제는 얼굴조차 알아 볼 수 없는 현실.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현실. 쓴웃음 짓게 한다. 이런 '단절'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인물은 '현화'이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은 (어떤 의미에서) 배신 때문에, 좌절되고 만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안타까운 이야기.

[럭키의 죽음] A동에 원룸으로 이사오게 된 학원강사인 '나'. 그는 고물상에서 일하는 황노인을 알게 된다. 황노인은 다소 도도해 보이는 인상으로 '럭키'란 이름의 개를 데리고 있다. 도도해 보이던 황노인은 그와 짧은 대화를 나눈것을 계기로 그에게 친근하게 수작하는데, 그는 그런 황노인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러다 알게 된 황노인의 전력. 그는 성격은 좋지만, 어딘가 허술한 사람으로 동네사람들의 따돌림을 받아 왔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 '럭키'는 병이들어 낑낑 신음소리를 내고, 동네사람들은 시끄럽다며 불평을 해데는데...

혼자 쓸쓸히 '럭키'에게 애정을 쏟는 황노인의 모습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사회에서 밀려난 늙은 그와 아무도 귀여워 하지 않는 늙은 개, 그들은 유일한 친구인 것이다. 병든 럭키의 수술비 30만원을 위해, 동네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는 황노인의 모습은 가슴이 아팠고, 안타까웠다. 마지막, '황노인의 선택'은 저런 현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결과인 동시에, 수술비 30만원조차 없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분노는 아닐런지. 황노인을 대하는 '나'의 심리변화 내지, 제3자적 태도도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9편의 단편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은연중 이야기한다. [젊은 자식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망쳐놓는가?]에서는 가정과 사회에서 설자리를 잃어버린 우리 아버지들의 현실을, [인터뷰]에서는 돈에 놀아나는 언론의 문제와 전학태란 인물 풍자를, [키스]에서는 방황을 잃어버린 젊음과 우리 사회를 이야기한다. 이는 전작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에서 보여지던 저자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저자의 첫 소설집, 인상깊고 흥미롭게 읽었다. 우리 작가들의 좋은 소설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지 않는 현실이 아쉬울 정도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으련만…아무튼, 그에 대한 내 호감은 앞으로 계속 될 것 같다. 좋은 소설 계속 선보여 주시길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