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 살인
아르노 들랄랑드 지음, 권수연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도서관에 앉아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점심도 먹지 않았다. 계속 읽었다. 책을 읽고 있단 사실, 그 사실 하나에 행복해질 정도로 <단테의 신곡 살인>은 대단했다. 

처음 이 책을 보고는 약간 당황했다. 그건 이름은 '단테시리즈'이지만, '줄리오 레오니의 단테시리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목만 유사할 뿐, '줄리오 레오니의 작품'과 '아르노 들랄랑드의 작품'은 전혀 다르다. 같은 것은 단테가 이야기에 언급된다는 것 밖에 없다. 가장 큰 차이는 '단테'라고 불리는 인물이 등장하느냐 아니냐인데, 이 작품엔 단테란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단테의 신곡'에 영감을 받은 살인사건만이 존재할 뿐이다.

두 작품의 우열을 정해볼까. <단테의 빛의 살인> 그리고 <단테의 신곡 살인>. 후자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무시무시한 '일 디아블로'를 추격하고,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피에트로'와 '란드레토'의 대 활약상, 아르노 들랄랑드의 현란한 묘사력,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특히 '단테의 신곡'을 바탕으로 하나둘 자행되는 끔직한 살인사건은 이 작품이 단순히 흥미만 추구하는 소설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나중에 <단테의 모자이크 살인>을 읽으면, 세 작품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겠다. 조금 잔인하지만^^

'아르노 들랄랑드' 그의 묘사력은 정말 이야기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특히 베네치아의 떠들석한 모습의 묘사(p.15-16)나, 살인사건과 시체묘사(p.77-82 /164-165), 비카리오 도서관에서 단테의 신곡-지옥편을 접한 '피에트로'의 반응묘사(p.202-204)등은 압권이다.

베네치아의 모습과 그들의 영화, 쇄락등 그들의 역사적 사실과 깊은 관련을 가지는 내용은, 문화적 합일점이 없는 독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욕스러운 부분이다. 지루해지기 딱 좋은 내용인 것이다. 나 역시 이 부분은 최대 위기였다^^ 하지만 이런 내용이 저자의 놀라운 묘사력과 충격적 사건과 어울리면서, 색다른 묘미를 선사했다. 어느덧 '이야기에 몰입해 버린 나'를 발견한 것이다.

산 루카 극장에서 아주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마르첼로 토레토네'. 베네치아 권력 핵심부는 이 사건을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닌, 고위인사들에 대한 정치적 범죄로 간주하고 사건해결의 혈안이 된다. 그런 권력핵심부의 하나인 10인 위원회의 '에밀리오 빈디카티'는 베네치아 총독 '프란테스코 로레단'에게 사건해결을 맡길 한 인물을 소개한다. 그가 바로 우리의 호프, '피에트로 루이지 비라볼타 데 살란트'(이하, 피에트로)

피에트로는 현재 감옥에 갖혀 있는 죄수신분. 이 때문에 총독은 그를 탐탁치 않게 여기지만, 빈디카티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그는 결국 자유를 대가로, 사건해결이란 중책을 맡게 된다. 그럼 그는 왜 감옥에 갖혀 있던 것일까? 그는 험란한 젊은 날은 보냈다. (그의 인생역정은 p.39-43참조) 그러다 암호명 '흑란'으로 불리는 비밀첩보요원으로 성장하지만 자기의 후견인의 아내, 안나 산타마리아와의 불륜이 들통나 온갖 혐의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갖혔던 것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피에트로'가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이다. 일단 그는 사건현장인 산 루카 극장을 찿아가 아직 보존중이던 사체를 살펴보고,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피해자 마르첼로 토레토네가 10인 위원회, 40인 위원회의 첩보원이었다는 사실, 동성애 같은 이상성욕자 였다는 사실등-을 알게 된다. 이어지는 고급창녀 '루치나 살리에스트리'와 유리장인 '패데리코 스파데티' 조사과정. 특히 루치나는 사건현장에 떨어져 있던 브롯치의 주인으로, 사건과의 관련성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여기서 비중있게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그건 바로 '카펠리 신부'이다. 그는 피에트로가 감옥에 갖힐 때, 앞장 섰던 인물로 그에게는 원수나 다름없다. 하지만 피에트로는 사건해결을 위해 그를 찿고, 그에게서 '일 디아블로'와 '스트리게'라는 중요한 단서를 얻는데...그리고 이어지는 어린 소년을 범하는 카펠리 신부의 모습과 정체불명의 쪽지. 사건은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살인사건은 끝이 아니었다. 문란한 동성애를 즐기던 타락한 신부 '카펠리'가 살해 당한 것. 그는 성당 꼭대기에 매달린 채, 벼락을 맞아 죽는데, 더 충격적인 것은 그가 거세를 당한채 죽었다는 사실. 하지만 살인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계속되는 살인. 죽음.

자, 줄리오 레오니의 단테시리즈엔 단테가 행정위원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역이지만, <단테의 신곡 살인>엔 단테란 인물은 없다. 지금까지 언급되던 '흑란 피에트로'가 바로 주인공이다. 그럼 왜 제목에 단테가 언급되는 걸까? 그건 바로 악의 무리 '일 디아블로' '불새'의 무리가 단테의 신곡에서 살인의 영감과 소재를 차용해 왔기 때문이다. 바카리오 도서관에서 처음 이 사실을 알아챈 '피에트로'는 그야 말로 경악(p.202)하는데, 이 부분의 묘사가 훌륭하단 건 위에서 밝힌 바 있다. (인용은 하지 않겠다, 직접 느껴 보시길)

'피에트로'란 인물은 참 매력적인 캐릭터다.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외모는 둘째치고, 사랑을 위해서(그것이 불륜일지라도)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모습. 그리고 뛰어난 검술. 어설픈 단테보다  그가 훨신 매력적이다. 그와 '안나 산타마리아'와의 금지된 사랑, 루치나와 그와의 짧은 만남. 인상적이었다.

<단테의 신곡 살인> 긴 말이 필요없다. 이 말 한마디만 하겠다. 정말 재밌다.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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