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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영혼 1 ㅣ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세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제 3세계 문학은, 항상 내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하지만 막상 접하고 나면, 그 난해함에 고개를 떨구곤 했다. 번역의 문제라 생각되는 작품도 꽤 있었고, 문화적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아 그런 작품도 있었다. '악의 영혼'은 프랑스 작품이다. 하지만 다른 제 3세계문학과는 달랐다. 특유의 난해함과 지루함을 이 작품에선 찿아 볼 수 없다. 가장 놀란 점은 속도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이다. 일단 이 부분 먼저 살피고 가자.
처음 살해당한 시체가 발견된 것은 p.42이하이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손목까지 절단당하고, 산을 이용해 이마에 문양을 세겨진 끔찍한 시체. 이에 동분서주하는 수사팀. 다른 한편에선 이야기의 또 한 축인 줄리에트가 납치 감금되는 사건이 진행되는데, 줄리에트 납치사건은 오랜기간 줄리에트와 채팅을 하던 '오베른'(인터넷 대화명)이란 인물이 자행한 것. 난 처음 손목절단 연쇄살인사건과 줄리에트 납치감금사건이 별개의 사건인 줄 알았다. 일단, 이런 범죄스릴러에서 용의자는 최대한 극적긴장이 고조되었을 때 등장해 왔기에,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인이 이렇게 빨리 등장할 리는 없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p.79이하에서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오베른'이 사살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 된다. 위에서 언급된 두사건은 모두 동일인물에 의한 것이고, 줄리에트는 또 하나의 희생자가 되기 직전 극적으로 구출된 것이다. 당황했다. '이미 사건이 해결되고, 용의자가 살해된 마당에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하는 걸까'하는 소박한 의문과 더불어.../하지만 이미 일단락 되었다고 생각했던 연쇄살인 사건이 또다시 발생(p.122-123이하)하고...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저자의 놀라운 능력은 이제부터 발휘된다.
보았는가? 다른 소설이 등장인물 소개와 배경소개에 주력하는 초반부에, '악의 영혼'은 스피디한 전개로 연쇄살인사건과 용의자 1차사살, 또다시 연쇄살인사건 발생. (정확히 이야기하면, '오베른'에 의해 자행되었던 수법과 동일한 수법의 살해사건) 저자는 아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몰아친다. 저자소개에 '미국스타일로 글을 쓰는 작가'라는 언급이 있는데, 이 부분은 공감이 간다. 읽으며 그 장면 하나하나의 생생함에 자연스레 헐리웃 스릴러 영화를 떠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악의 영혼'을 미국 스타일의 작품이라 하는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엔 '미국 스타일'작품이란 용어엔 약간의 가볍다라는 함의가 내포되어 있다. 비아냥 거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가벼워 지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법의학 지식이 화려하게 부각된 p.168-180이다. 이 부분은 정말 놀라웠다. 철저한 사전준비와 공부없이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내용인 것이다. 저자가 2년간 이 작품을 준비하며, 법의학과 범죄정신의학을 공부했다는 것이 저런 놀라운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리라.
음. 글 서두에 '악의 영혼'이 가지는 색다른 특징을 언급하느라, 등장인물 소개도 못했다. 주인공인 '조슈아 브롤린'은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앞으로 이어질 악의 3부작에도 전부 그가 주인공이라 하는데, 그는 분명 눈여겨 볼만한 인물이다. 그는 31살로 미식축구스타처럼 생겼다고하여 '쿼터백'이라고 불린다. 그는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를 꿈꾸다 어찌어찌하여 형사가 되었다. 보장된 출세가도를 마다하고 형사가 된 브롤린. 그의 일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뭔가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아니 뭔가 슬픈비밀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초반 플롤로그에 등장하는, 한 어린이의 미스터리한 행방불명 사건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조시'라고 불린다. 조슈아, 조시, 비슷하다. 거기다 그 아이가 행방불명된 것이 80년이다. 이야기를 추론해 볼 때, 그 당시 아이는 6~8살로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31살인 조슈아의 나이와 거의 들어 맞는다. 조슈아는 과연 어떤 비밀을 간직 한 것일까?
미모의 '줄리에트 라파에트' 역시 주요인물이다. 오베른에게 납치되어 죽음직전까지 갔다, 브롤린에게 구출된 그녀는 심리학 전공의 대학생이다. 충격에서 벗어나 안정을 찿아가던 그녀는 또다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으로 충격에 빠지고, 브롤린에게 연락을 취하는데, 피어나는 줄리에트와 브롤린의 사랑? 과연 어떻게 될런지.
오랜만에 속도감 있는 범죄스릴러를 만났다. 법의학과 범죄정신의학에 대한 저자의 깊이 있는 지식도 볼만하다. 이어지는 악의 3부작 기대한다.
* 엄청난 속도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역자의 깔끔한 번역덕이라 생각한다.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