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빛의 살인
줄리오 레오니 지음, 이현경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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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 유명한 '단테 시리즈'를 드디어 손에 잡았다. '단테의 빛의 살인'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기다리던 것에 한걸음 다가간다는 설렘에 출간순서 따위는 무의미 했던 것이리라. 단테하면 떠오르는 것은 '신곡'뿐이다. 살인사건, 추리, 탐정과 단테의 어울림...도저히 상상이 안된다. 과연 저자는 어떻게 단테라는 인물을 형상화 해낼까? 이제 단테와 함께 중세시대로 떠나보자.

추리요소를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소설은 초반부가 심심하기 마련이다. 등장인물 소개도 해야하고, 사건의 뼈대로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테의 빛의 살인'은 초반부터 강렬하다. 피렌체 서쪽 늪지에서 유령선을 방불케하는 갤리선이 발견되는데, 배안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다.(p.17-22) 행정위원인 단테는 수비대장과 인원들을 지휘해 배안을 조사하고, 정체불명의 기계장치를 찿아 낸다. 도대체 이 유령선은 뭐란 말인가? 사람들은 왜 죽은 것인가? 발견한 기계장치는 뭘까?

이야기는 계속되는 충격적 사건으로 한층 심화된다. 사람들은 '기적의 성녀'가 출현했다며, 술렁인다. 기적의 성녀란 허리 부근에서 절단된 젊은 처녀의 상체(p.46)를 말하는데, 상체만 남은 성녀는 눈을 움직이고, 말도 하고, 숨도 쉰다. 한마디로 그녀는 살아있다. 사람들은 충격과 경외에 빠져, 기부금을 요구하는 그들의 말에 따른다.

또 하나의 사건은 바로, '안젤로 여관의 살인사건'이다. 안젤로 여관에 투숙했던 로마로 가는 순례자 한 명(팔레르모에서 온 브루넷토)이 끔찍하게 살해(p.63)된다. 살해당한 자는 정말 브루넷토란 인물이 맞을까? 단테는 안젤로 여관에 투숙하고 있는 투숙객들을 조사하며, 묘한 '어떤 것'을 느끼는데...

읽으며, 내내 아쉬운 점이 있었다. 중세 서양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내 자신에 대한 아쉬움. 중세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휠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들어, 단테가 행정위원으로 등장하는데, 난 솔직히 당시 '행정위원'이란 직책이 구체적으로 뭘 담당하고, 어떻게 임명되며, 하는 일이 뭔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행정위원인 단테가 경찰으로 보이는 '수비대장'과 그 대원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지, 그 관계가 잘 이해 되지 않았다. 또한 교황권과 종교에 대한 부분도 깊이 있는 이해가 어려웠다.

노파심으로 덧붙이자면, 그렇다고 이 책이 중세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이 있어야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역자의 노력과(세심한 주석), 이야기 그 자체의 흥미덕에 금방 빠져들 수 있다. 위 언급은 그 이상의 감흥을 원하는 내 자신이 자신에게 보내는 아쉬움이라 보면 될 것이다. 자, 이제 다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자.

초반부에 배에서 발견한 기계장치. 기억하는가? 이제 그것이 부각된다. 단테는 기술자 알베르토에게 배에서 발견한 기계장치 분석을 의뢰하고, 그는 그것을 시계로 추정하는데, 저 기계장치는 도대체 뭘까? 일단 궁금증은 뒤로하고, '안젤로 여관 살인사건'으로 시선을 돌리자. 피해자 브루넷토는 명예술가 '귀도 비가렐리'로 밝혀지고, 연이서 여관 투숙객들이 죽임을 당하는등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동분서주하는 단테...

'기적의 성녀'와 그 일행들의 정체도 밝혀진다.(p.166) 기적의 성녀가 보여준 것은 지극히 간단한 마술트릭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황당함이란. 그리고 드러나는 그들 일행의 목적. 그들은 '프리드리히의 보물'을 노리고 있다. 일행의 좌장격인 체코와 성녀와 단테의 관계는 또다른 흥미거리이다. (단테와 성녀와의 뜨거운 사랑도 약간 언급됨^^) 숨겨진 수많은 음모와 미스테리 속에서 고분분투하는 단테. 과연 그는 진실을 발견할 것인가?

'단테의 빛의 살인' 기대만큼 흥미로웠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과 속도감 있는 전개, 좋다. 하지만, 중세라는 시대적 공간이 품고 있는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경우, 깊이 있는 이해는 조금 어렵다. 단테와 추기경이 언쟁하던 p.339 이하가 지루하게 생각됐다면, 그건 바로 저런 이유 때문인 것이다. 단테라는 역사적 인물을 형상화해 멋진 추리극을 선보인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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