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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뒤틀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절한 고통을 받은 우리의 형제자매들. 일제의 악랄한 식민통치, 끔찍한 소비에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등, 우리는 강대국의 노예였다. 이런 우리 부모형제들의 고통과 비극은, 안타깝게도 개인차원에서 조명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냥 '민족의 비극'인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 개인 한 사람의 삶? 그건 사치였다.
조정래님은 역사적 소용돌이속에서 고통받은 개인을 주목한다. 복도훈님의 해설을 잠시 살펴보자. "...책 속에는 왕의 이름들만 나와 있을 뿐이며, 역사와 그를 기록하는 사가는 알렉산더가 인도를 정복할 때 그 혼자서 해냈는지 묻지 않고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완성한 날 밤에 벽돌공들과 인부들이 어디로 갔는지 더이상 궁금해하지 않는다. 조정래는 소설 또는 문학의 임무는 만리장성을 쌓았던 벽돌공들과 인부들의 한 많은 이야기와 신산스러운 삶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충실히 전달하는 것이 일차적 소임임을 분명히 한다."(p.224)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베니스의 개성상인처럼 조금은 의아한 사진이다. 한 동양인이 독일군복을 입고 적개심(?) 가득한 시선으로 처다보고 있는 사진. '오 하느님'은 사진에서 부터 시작된다해도 무방하리라. (하지만, 소설속에서는 등장인물이 직접 사진을 찍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점은 복도훈님도 뒤 해설에서 약간 의아하다는 뉘앙스로 언급하고 있다) 그럼 소설속으로 들어가 보자.
일본은 지원병임을 가장하고, 만주로 쫓아낸다고 협박해, 젊은 청년들을 전선으로 내몬다. 신길만. 그 역시 부모의 말을 뒤로 하고 전지로 떠난다. "총알 피해 댕겨라"(p.20) 아버지의 무뚝뚝한 한마디. 귀한 자식을 전지로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는 옥쇄를 강요하는 일본군에서 벗어나 소련군에 포로로 잡힌다. 힘겨운 포로생활. 어느 날 갑자기, 소련군 장교는 신길만을 포함 한국인 포로들에게, 소련군이 되는건 어떠냐고 제의(?)하고 그들은 받아들인다.(p.83) 갑자기 달라진 대우. 그들은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하는 독일군과 맞서 싸우다 독일군의 포로로 잡히고, 또 독일군이 될 것을 강요당한다. 독일항복 후 이번엔 미국의 포로가 된 그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조국이 아니었다. 마지막 장면은 조금 갑작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가슴의 다가온 울림은 심했다.
200페이지 가량의 짧은 장편이라,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우리민족의 슬프고 가련한 역사와 그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간 우리 형제자매들. 많은 생각을 했다. 자칫 잃혀질 수 있었던 한 인물을 저자는 훌륭하게 그려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삶, 갈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아 등장인물이 조금 밋밋하다. 그리고 위에서 잠깐 언급한 급작스러운 결말과 실존하는 사진이 찍혀진 내역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역시 아쉬웠다. 내용의 깊이나, 소재만을 봤을때, 거의 대하소설급인데 너무 짧은 소설로 그려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조정래 작가님께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거 같지만^^)
* 200페이지 정도인데, 책이 상대적으로 두꺼워 보인다. 종이질이 다른걸까? 조금 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