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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경성 - 근대 조선을 들썩인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럭키경성>은 독특한 책이다. 그리 멀지 않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일제강점기,근대조선의 부자들과 투기꾼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아주 흥미롭게.
<럭키경성>에 소개된 이야기들은 전부 실화라고 한다. 저자는 풍부하게 신문자료를 활용하고 고어체를 순화해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일본이 대륙진출을 위해 혈안이 되었던 '길회선'(p.19), 쌀 주식시장이라 할 수 있는 '미두시장'(p.53.118.119등) 그리고 최송설당님(p.249)이나 백선행님(p.209)같은 인물들까지.
미두왕 반복창 이야기를 살펴보자. 반복창은 어려서 부친을 잃고 일본인 집에 아이보는 하인으로 들어간다. 주인인 미두상 아라키에게 미두에 대해 배운 그는 자립해 미두상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44년 조선의 미두사에서 미두로 가장 큰 환희와 좌절을 맛본 사람"(p.52)이라고...
아라키에서 받은 일본식 이름 '반지로'로 잘 알려진 그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이름을 떨치는 미두왕이 되었다. 당시 미모로 잘 알려진 '원동자켓'의 언니 김후동과 결혼하는데, 결국 그의 몰락과 함게 결혼생활과 파탄이 난다. (원동자켓에 대해선 65페이지 이하 읽어보시길) 미두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것인데, 놀랍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주식시장 비슷한 미두시장이란게 있었고, 그로 인해 성공과 좌절을 동시에 경험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평양 백과부의 행복한 돈 쓰기'(p.209)부분을 읽으며 감동했다. 뿌리깊은 남녀차별을 이겨내고, 악착같이 돈을 모은 백선행님. 그리고 힘들게 모은 돈을 교육발전을 위해 흔쾌히 쓴 아름다운 모습. 존경스럽다. 그녀가 돈을 모으는 과정은 눈물겨웠다. 한 부분을 보자. '조선에서 젊은 여자가 남편도 없이 홀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아침 가시밭길을 걷는 것과 다름없었다. 백 과부가 돈푼이나 만진다는 소문이 퍼지자 온갖 사내가 재산을 '날로' 집어삼키려고 달려들었다'(p.217) 탐관오리인 평양부윤이 어처구니없는 누명을 씌워 재산을 강탈하려하고, 강도가 들어 위해를 가하기도 하고...하지만 그녀는 꿋꿋하게 견뎌낸다.
그녀는 하도 좋은일을 많이해 '선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사회에 기부한 금액만 무려 31만 6천여원. 오늘날의 가치로 하면 316억이라고 하니...놀랍다. 그녀는 정말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를 구두쇠라 비난하지 못했다. 힘들게 번 돈을 사회를 위해 멋진게 쓴 그녀를 과연 누가 비난한단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한가지는, 저자가 가급적 가치판단을 자제하고 중립적 입장에서 서술한다는 점이다. 돈에 눈이 먼 투기꾼도, 행적이 모호한 인물도...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조심스레 서술한다. 그건 이 책의 초점이 이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몇몇 부분에서 대표적인 친일파를 '저명인사'라고 표현하는데, 거부감이 들었다. 뭐, 그들이 저명인사인건 맞다. '조국을 배반하고 일신의 영달만을 꿈꾼 저명인사'. 아무튼.
<럭키경성>을 통해 일제강점기와 근대조선의 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그간 몰라던 것을 알게 되었고,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저자의 전작인 <경성기담>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