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안텀 블루
오사키 요시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 스포일러 있을지도

지금 난 울고 있다. 책읽다 우는 청승만은 참아보려 했으나, 결국 울어버렸다. 내 감정을 공유하지 못한 이는, 비웃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른뒤 나 역시 부끄러워 할런지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가 느낀 감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테니…

야마자키 류지. 그가 서 있는 곳은 백화점 옥상이다. 지금은 죽은 요코와 함께 자주 왔던 장소. 백화점 1층부터 9층까지 구석구석 구경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 요코를(p.10) 기다리는 것처럼, 떠나버린 그녀를 추억한다.

그는 '월간 발기'란 에로잡지의 편집자이다. <파일럿 피쉬>와 설정이 같은데, 반갑게도 월간 발기의 편집장인 '사와이', 모델 쓰러뜨리는 것이 목표인 편집자동료 '이가라시' 역시 등장한다. <파일럿 피쉬>, <아디안텀 블루>는 서로 비교해 가며 읽으면 더 빠져 들 수 있을 것이다. 유사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두 소설은 오묘한 차이가 있다.

56페이지 이하는 사와이가 야마자키를 찾아와서 격려하는 내용이다. 처음엔 몰랐지만, 이 부분은 이야기의 끝과 연결되어 있다. 처음 옥상 장면도 같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지금의 야마자키는 요코와 '리스'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 후 돌아 온 그이다. 시간적 배열을 뛰어 넘는, 이런 입체적 구성은 상당히 효과적으로 활용되어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준다.

야마자키 류지는 극심한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와 함께 했던 여인들은 전부 사라졌다. 자기에게 호감을 보이며, 아무도 없는 미술실에서 성기를 보여줬던 고등학교 선배 미쓰코, 연인(혹은 배우자)을 잃은 비슷한 아픔을 공유한 히로미, 그리고…그리고…애절한 사랑의 주인공 요코. 모두가 사라졌다.

<아디안텀 블루>는 한마디로 미쓰코, 히로미, 요코와 야마자키 사이의 사랑 이야기다. 여기서 한명을 추가한다면, 중학교때 친구 가사이의 꾐에 빠져 청바지를 훔치다 보게된 꿈꿔왔던 여성상의 그녀 정도. 좀 자세히 살펴보자. 청바지를 훔치다 경비원에게 잡힌 야마자키는 쏟아지는 노골적인 증오의 시선과 굴욕감에 몸서리 친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한 여성. 그녀는 확실히 다른 빛의 시선을 던진다.(p.36) "불쌍해" "아프지?" "참아야해, 기운내고" 야마자키에게 위로의 말까지 던지는 그녀. 야마자키는 그녀를 이렇게 표현한다. '그녀의 입술의 움직임이 내 마음속에서 목소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그녀의 얼굴은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을 가로 막아 주는 내 스스로가 만든 여성상과 너무나도 흡사했다.'(p.37)

시간의 순서대로 보면, '공상의 여성상인 그녀' -> "미술부 선배 미쓰코" -> "직장에서 만난 사진작가 요코" -> "요코 사후 만난 히로미" 순인데, 이런 일련의 만남과 상실을 통해 야마자키는 행복과 우울을 느낀다. 모두가 사라진 극한의 우울은 아디안텀을 통해 형상화된다. 천천히 죽어가는, 비참히 처져있는 아디안텀. 한번 오그라들기 시작한 아디안텀은 끝내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한다.(p.25) 스포이드 상태의 영양제는 시들었던 이파리에 생기를 주지만 이는 순간적인 효과일 뿐이다. 시들어 버린 아디안텀, 깊은 상실감에 빠진 야먀자키. 그는 끝내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하는 아디안텀이 되지 않고자, 슬픔과 상실감을 떨쳐버리고 삶의 최선을 다한다. '우울 속에서 일어선 아디안텀 만이 살아 남는다'(p.365)

이제 야마자키와 요코의 사랑이야기만이 남았다. 이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요코는 물웅덩이 사진만을 찍는 것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사진작가이다. 그녀는 모델인 유카의 소개로 야마자키와 만나게 되고, 결국 둘은 사귀게 된다. 야마자키의 말을 들어보자. "나와 요코가 사귀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중략) 굳이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서로의 둥지를 관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p.140)

행복한 이들 커플의 알콩달콩한 사랑. 하지만 '붉은 달 이야기'(p.172-173)는 그게 어떤 흐름에서 나왔건, 이들 사랑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해 준다. 어쩜, 꼭 비극적이라고 할 순 없을지 모른다. 먼저 떠난 요코지만, 행복하게 사랑하는 이 앞에서 죽어간 그녀이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행복했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들 앞에 닥친 안타까운 현실. 하지만 이들은 사랑의 힘으로 이를 극복해 간다. 아름다운 리스에서 사랑하는 이와 죽어간 요코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녀를 과연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디안텀 블루>, 러브스토리 아님을 가장한, 최고의 러브스토리이다. 평화롭게 비추는 남프랑스 리스해안의 태양같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 요코가 새이름을 모르고 자꾸 틀리는 부분, 그런 그녀를 위해 조류도감을 사주는 야마자키, 죽어가는 병상에서 조류도감을 너덜너덜해 질때까지 읽는 요코. 서평엔 언급하지 못했으나, 너무나 아름답고, 애절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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