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권의 책이 이토록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이토록 가슴을 뒤흔들 수 있을까? 어떻게 이 감동을 글로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십여년전 장이모 감독의 영화 '인생'을 봤었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공리의 명연기와 감동은 꽤 오래동안 남아있었고, 자연히 원작인 위화의 <살아간다는 것>을 읽어보리라 마음 먹었다. 하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던지 좀처럼 읽지 못했다. 지금에야 이 책을 읽게 된건, 명작의 감동을 천천히, 가슴깊이, 그리고 오래동안 이어가게 하려는 누군가의 뜻이리라 믿는다.

이야기는 민요수집을 하는 이야기속 '나'가, 늙은 소와 밭을 가는 한 노인과 만나면서 시작된다. '나'는 노인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민요수집가 '나'가 존재하는 현재가 바탕이 되고, 노인의 이야기는 그 안에 중심이 되는 구성이다. 액자식? 사실 구성이 어떻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밭가는 노인이 들려 주는 이야기속으로 들어가자.

부와 지위를 소유한 명문가에서 태어난 푸구이. 그런 풍족한 배경은 푸구이를 타락하게 만들고, 그는 '먹고 마시고 계집질하고 도박하고, 온갖 방탕한 짓이란 짓'(p.27)은 다 한다. 천하의 개망나니 푸구이지만, 하늘은 그와 아름답고 현명한 '자전'을 짝지워 준다. 푸구이의 말을 들어보자. "자전은 좋은 여자였어. 나 같은 놈이 그처럼 어질고 지혜로운 여자를 아내로 맞이 할 수 있었던 건 전생에 개노릇을 하며 팔자를 고치게 해달라고 짖어댔기 때문이라네. 자전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다 참아냈아"(p.30) 마냥 순종적인 것이 여성의 미덕이라고 할 수 없지만, 자전의 현명함과 지혜로움, 인내심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푸구이같은 개망나니한테 왜 시집 갔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로.

결국 푸구이는 도박으로 전재산을 탕진하고, 온 가족은 초가집으로 내 몰린다. 결국 장인인 미곡상 주인도 딸 자전을 데려가고, 푸구이는 그제야 뒤늦게 후회한다. 둘째, 유칭이 낳고 몸조리에 다시 푸구이곁으론 온 자전.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건 고생뿐. 하지만 자전은 한마디 불평 없이 묵묵히 푸구이와 가족을 돌본다. 아 정말 아름다운 자전.

위화는 여성적 가치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허삼관 매혈기>에서 당당하고 활기넘치는 옥란, <인생>에서 지혜롭고 아름다운 자전, 그리고 망나니 자식이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 주는 어머니. 같이 등장하는 남성캐릭터들과 비교하면 이들 여성캐릭터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지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단, 두 작품에서만 드러나는 특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여성적 가치의 강조는 소설차원을 넘어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하고 생각한다. 다시 이야기 속으로 돌아오자.

갑작스런 몰락에 푸구이의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몸져 눕는다. 의원을 찿아나선 푸구이. 그런 그의 앞엔 시대의 험란한 파도가 덮쳐오고 있었으니, 그건 바로 군에 끌려간 것이다. 병든 노모와 부인, 자식들…그들을 뒤로 하고 군에 끌려간 푸구이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전쟁과 이데올로기 앞에 인간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푸구이와 춘성, 라오취안 셋이 겪는 수많은 어려움과 이들의 전우애. 이건 색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이야기 뒷부분, 푸구이가 뼈를 묻는 슬픔속에서(어떤 일인지는 언급하지 않겠음. 직접 읽어보시길) 춘성을 쉽게 용서하는 부분은 저런 의미에서 이해가 됐다. 자전은 절대 용서하지 않지만, 푸구이는 쉽게 용서했던건, 총알이 튀는 전장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진한 전우애의 발로는 아닐런지.

결국, 천신만고 끝에 푸구이는 가족곁으로 돌아오지만, 어머니는 이미 죽고, 맏이 펑샤는 병으로 귀머거리에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푸구이가족의 불행은 이게 시작일 뿐이었다. 구루병으로 쓰러진 자전,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는 유칭. 인생…인생…과연 인생이란건 이런 것일까? 밀려드는 슬픔. 펑샤의 결혼과 동시에 잠시나마 행복함을 누렸던 푸구이 가족이지만, 행복은 결코 오래 머물지 않았다. 이어지는 죽음속에 남은건 푸구이뿐. 인생이란 과연 무었일까?

<허삼관 매혈기>를 통해 작가 위화에 푹 빠졌는데, 그는 이번에도 날 감동시켰다. 그의 개정판 서문 한부분을 인용하면서 리뷰를 마치겠다. 내 부족한 능력때문에 내가 느낀 감동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게 한스러울 따름이다.

"모든 작품은 누군가가 읽기 전까지는 단지 하나의 작품일 뿐이지만, 천명이 읽으면 천개의 작품이 된다. 만명이 읽으면 만개의 작품이 되고, 백만명 혹은 그 이상이 읽는다면, 백만개 혹은 그 이상의 작품이 된다."(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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