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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메일
이시자키 히로시 지음, 김수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체인메일은 노블마인의 '파프리카 북스' 시리즈의 첫작품이다. 일본소설의 인기는 이미 정점에 올라섰고 점점 포화상태가 되가는 상황에서, '1525세대를 위한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표방하는 파프리카 북스는 시의적절한 기획이라 생각한다.
체인메일은 일단 재미있다. 하지만 이시자키 히로시는 단순한 재미를 넘는 완성도를 성취해냈다. '아동소설의 영역을 크게 뛰어넘는 작품'이란 평이 전혀 무색하지 않다. 특히 내가 주목한 부분은 '어린소녀들의 시각으로 본 사회문제'였다. 처음 릴레이소설을 제안한 유카리를 제외한 사와코, 먀유미, 마이는 모두 어떤 사회적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사와코는 이지메와 스토킹문제, 마유미는 앨리트스포츠의 문제, 마이는 가족문제.../ 사실 사와코와 마이의 경우는 이야기전개를 위해 사회문제를 끌어들인 흔적이 짙다. 하지만 마유미의 경우를 보자.
마유미는 최고 유망주로 기대되는 사유리를 친구로 둔 실력없는 배드민턴선수다. 마유미와 헤어지는게 싫은 사유리는 마유미와의 동반입학을 입학조건으로 제시하고, 학교측은 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어차피 마유미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 불과했다. 단체로 주문할 워밍업슈트의 수가 맞지 않은걸 알고 마유미가 이유를 묻자, 엘리트스포츠와 사회문제의 문제를 대표하는 인물인 나카자와 코치는 이렇게 말한다. "아아, 넌 뺐어. 넌 필요 없잖아?? 마유미, 너 우리 학교에 입학했을 때 조건 기억하지? 애당초 네 실력으로는 우리 학교에 들어올 수 없었어."(p.128) 이에 마유미는 "코치의 말은 전부 옳았다. 네라는 대답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왠지 슬펐다. 부당한 말을 들은게 아니었다. 이미 잘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슬펐다. 마음속에서 뭔가 뚝 소리를 내며 끊어진 것 같았다."(p.129)라는 대견한 반응 을 보인다.
또한 릴레이소설을 쓰기 위해 PC방에 갔다 심부름에 늦고 전 국가대표 진나이 기미코가 이벤트를 하고 있어 그것때문에 늦었다고 변명하자, "셔틀도 제대로 못치는 녀석이 전 국가대표의 얘기를 들어서 무슨 소용이 있어? 그럴 틈이 있으면 셔틀이나 줍고 주전선수들 옷이나 빨고 식사나 도와. 넌 너한테 걸맞은 일만 하면 돼."(p.152) 완전 인격모독. 저런 사람들을 우리주변에도 무수히 많다. 학생들의 인격을 무시하고 오로지 최고만을 강요하는......
또한 이들은 저러한 현실의 대안으로 인터넷공간을 떠올리는데, 이 부분도 한번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얼굴도 모르는채 현실을 외면하고 가상공간에서 빠져지네는 것.
이제 내용을 좀 살펴보자. 초반부는 현실세계와 가상릴레이소설의 세계가 분명히 구별되는데, 진행 될수록 구분이 모호진다. 특히 사와코의 경우, 양자의 이름까지 동일하다. 스토커로 설정된 쓰노다 데쓰로의 스토커 행각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릴레이소설은 갑작스런 사와코의 행방불명으로 위기를 맞는데...과연 사와코는 소설처럼 스토커에게 납치된 것일까? 처음 이 부분에서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실제 데쓰로 같은 다른 스토커가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
저자는 후반부로 갈수록 추리적 기법, 서술트릭을 동원하는데, 상당히 먹힌다. 추리소설이라 이름붙여도 무방할 정도로. 막판 진실이 밝혀지고, 앞부분 이해가 안되던 부분들이 깔끔하게 정리되는데, 위에서 길게 언급한 부분에 정신이 빠져있어서인지, 아니면 아동소설 출신 작가라 얕잡아 봐서 그런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었다. 상당히 치밀한 구성. 이시자키 히로시의 다음작품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