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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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장이모 감독의 [인생]이란 영화를 봤다. 공리의 명연기가 인상적이었고, 무척 감동적이었다. 꽤 오래전 일인데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 후 한참 뒤에야 [인생]이 위화의 소설(<살아간다는 것>)을 바탕으로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읽지 못했다. 위화에 대한 관심의 고리는 다행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는데, 우연히 위화의 다른 작품 <허삼관 매혈기>를 접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겠다. <허삼관 매혈기>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삶의 모든것이 담겨져 있다고 감히 말해본다.

일단, <허삼관 매혈기>는 재미있다. 비극적인 장면에서도 슬픔으로 일관하지 않고, 잠시 뒤로 물러서는 여유를 보인다. 허삼관과 그의 부인 허옥란의 해학적인 모습과 넘치는 개성은 이런 재미를 배가 시켜준다. 특히 허옥란의 자유분방한 모습은 인상적이다. 당당하게 생리중에는 아무일도 안하겠다고 하는 부분, 출산도중 허삼관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는 장면, 그리고 다음 장면,

'하루는 삼락이가 1년3개월 되었을때, 허옥란이 허삼관의 귀를 잡아 당기며 물었다. "내가 아이를 낳을때 당신은 바깥에서 희희낙낙 했겠다?" "난 웃은적 없어. 그저 좀 히죽댔을 뿐이지, 소리를 내서 웃은 적은 없다구." "아이야" 허옥란이 탄성을 질렀다. "그러니까 아들들 이름이 일락,이락,삼락이지. 내가 분만실에서 고통을 한번,두번,세번 당할때 당신은 밖에서 한번,두번,세번 즐거웠다 이거 아냐?"(p.49) 하하. 저런 당돌하고 깜찍한 허옥란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저런 보배같은 허옥란과 결혼할 수 있게 해준건 바로 매혈이다. 처음 방씨와 근룡과 피를 팔고 35원이란 거금을 손에 넣은 허삼관은 그 돈을 뭐에 쓸까 궁리하다, 결혼자금으로 쓰기로 결심한다. 그의 주변엔 같은 생사공장에서 일하는 '임분방'과 간이식당 점원이 있었는데, 그 점원이 바로 허옥란이다. '그녀는 새벽녘에 커다란 기름솥 옆에서서 꽈배기를 튀기면서 줄곧 "아이야,아이야"하는 소리를 질렀다. 펄펄 끊는 기름이 그녀의 손에 튀거나 부주의해서 미끄러졌을때, 그녀는 늘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탄성을 내지르는 것이었다. "아이야..." 그녀는 외모 또한 출중하여 '꽈배기 서시'라고 불렸다.(p.36참조) 결국, 허삼관은 허옥란을 결혼상대로 점찍고, 그녀의 아버지를 찿아가 단판을 짓는다.

여기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하소용'이다. 하소용은 허옥란이 결혼전에 잠깐 만난 남자다. 나중에 태어나는 허삼관의 첫 아들 일락이 사실은 하소용의 아들임이 밝혀져 평지풍파를 야기한다. 하소용과 일락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무척 재미있는데, 외간남자의 애까지 낳은 부인을 대하는 허삼관의 태도는 주목할만 했다. 우리같으면 당장 이혼말이 나왔을법한 상황인데도 유연하게 행동하는 점에서, 중국여성의 지위가 우리보단 높다는 생각을 했다.

<허삼관 매혈기>는 허삼관의 삶을 따라 진행되는데, 그의 삶은 매혈의 삶이요, 곧 중국의 현대사이다. 그가 첫번째 피를 파는건 위에서 살펴본 허옥란과 결혼하기 전, 두번째는 일락이가 방씨아들을 돌로 찍어 치료비를 물어야 할 때, 세번째는 다리를 다친 임분방을 위문하고 그녀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네번째는 문화대혁명을 전후해 옥수수죽만 마셔댄 식구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기 위해, 그 다음은 아들들의 건강과 이락이 직장 간부접대를 위해…. 희극적으로 묘사되는 허삼관이지만 자식들을 위해 끊임없이 피를 파는 모습은 가슴이 아팠다. (특히 간염에 걸린 일락을 위해, 상해로 가면서 3~4일에 한번씩 피를 파는 장면)

'아직 읽지 않았다면 꼭 읽어보시라' 이 한마디로 끝내겠다. 감동과 재미 모두를 갖춘 정말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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