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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도치의 회고록
알랭 마방쿠 지음, 이세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아프리카 출신 작가의 글은 처음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아주 설랬다. 알랭 마방쿠란 작가가 마침표를 쓰지 않는다는 것, 아프리카 민속신앙을 바탕으로 소설을 전개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를 넘어서는 새롭고 독특한 자극을 선사해 주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마지막장을 넘긴 지금, 조금 어리벙벙하다. 마치 안개속에서 러시아방송을 듣는것과 같이...일단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다. 옮긴이 말을 엿보니, '인간세상의 부조리한 행태를 비판하고 인간과 동물 가운데 과연 누가 더 짐승같은 존재인지 반문한다'라고 하는데, 글쎄...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내 자신이 알랭 바방쿠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거라 생각한다.) 또한 바오밥나무에게 고백하는 식으로 서술되는 서술방식 역시 초반에는 신선하게 받아 들여졌으나, 갈수록 지루하고 따분했다. 대략적인 감상은 잠시 멈추고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이야기의 화자는 '느굼바'라는 가시도치이다. (가시도치란게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데, 고슴도치와는 다른 '호저'란 동물의 다른이름임) ('느굼바'라는 이름은 이야기내내 알려지지 않다 끝부분인 p.192에서야 슬그머니 등장한다) 느굼바는 키방디의 분신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해로운 분신'. 그는 키방디의 명령을 받아 그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살해한다. 총 99명의 사람을.../이야기는 키방디의 죽음을 목격한 느굼바가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며, 자신의 삶을 바오밥(바오바브)나무에 고백하는 형식이다.
느굼바의 고백속에서 키방디의 삶,성장기,아버지,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지며, 독자는 그의 고백을 따라 키방디의 모습을 그려간다. 키방디의 아버지역시 분신(아버지의 분신은 쥐)을 가지고 마음에 들지 않는 동네사람들을 살해하다 동네사람들에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다. 동물분신의 역할 교대의식(p.54)이나 또다른 자아가 묘사되는 부분(p.73)은 아프리카의 토속신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상상력의 깊이를 깊게 하지만 동시에 독자에게 이질감을 줄 수도 있다.
키방디는 잘난척하는 '아메데' 살해를 사주하고 느굼바는 가시를 사용해 살해한다.(p.148) 이어 종료주를 채취하는 영감, 돈을 빌려놓고 갚지 않는 율라를 차례로 살해하는데(p.154/p.158-159) 느굼바의 살해는 이게 시작이다. 가시도치의 가시로 과연 살해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 소설 전체적으로 풍기는 민속적이고, 약간은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아프리카 민속신앙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동물이 화자가 되어 시종일관 고백하는 서술도 색달랐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여러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위에도 잠깐 이야기 했지만, 전반적으로 지루했다. 바오바브나무에게 "~~했지. 했었지"하는 가시도치의 말투도 이야기가 계속 될 수록 짜증이 났다. 그리고 느굼바와 키방디의 결합관계에 대한 설명도 미흡해(이해 또는 납득이 되지 않아) 그들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었다. 이와 연장선상에서 등장인물들이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아 등장인물에 대한 몰입 역시 어려웠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을 말하라면, 알랭 마방쿠라는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된 사실, 그 하나를 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