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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러 갑니다
가쿠타 미쓰요 지음, 송현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전에 샀던 <대안의 그녀>는 앞부분만 조금 읽고 말았으니, <죽이러 갑니다>는 끝까지 읽은 가쿠타 미쓰요의 첫 작품이다. <죽이러 갑니다>는 7편의 단편이 모여있는데, 전체를 흐르고 있는 '살의'라는 주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연작소설처럼도 느껴진다.
"저는 지금 사람을 죽이러 갑니다" 버스안에서 들려오는 낮선여자의 한마디. 이 한마디는 구리코 내면에 숨어있던 살의를 잠에서 깨워낸다. 이유없이 자기를 차별하고 놀림감으로 만들었던 초등학교때 담임 사루야마 후미코. 구리코는 그녀를 찿아가기로 한다. 힘겹게 사루야마를 찾기 시작한 구리코, 왜 그렇게 열심인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채…
낡은 병원에 초라하고 치매든 몰골로 누워있는 후미코를 보고 구리코는 생각한다. "…그렇게 무력한 시루야마를 지금 자신의 눈으로 보면서 구리코는 내가 왜 이렇게 사사로운 것에 집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혹은 마음속 어디선가 잘 됐다고 기분좋아 하다가, 가엷은 노인을 원망하면 뭐하나 체념하기도 하고,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마음먹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구리코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것은 새롭게 생겨나는 분노이다"
예민한 학창시절을 망쳐버렸던 늙고 추한 인간에 대한 분노. 당연한 그 감정에 오히려 구리코는 자신을 돌아본다. "자신이 그렇게 편협하고 원망하고 있었다는 것에 약간이지만 실망했다." 학창시절 구리코에게 가해진 사루야마의 악질적 괴롭힘과 추악한 차별. 거기서 싹튼 살의. 난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절로 내 가슴속으로 들어와 이해되어 버렸다. 내가 구리코였다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본다. 상대에게 품어온 분노를 돌아볼 여유가 있을지.
구리코는 그녀를 찾아간 이유가 '추하게 변한 증오의 대상을 보고 싶기 때문'이라 하지만, '그녀 때문에 아파했던 학창시절 기억을 버리고 싶어서는 아닐까'라고 생각 해본다. 늙어 소멸할 증오의 대상을 확인하고 복수를 자연의 섭리에 맡기는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용서라 할 수 있을까?
다른 단편중에선 '아름다운 딸'이 인상적이었다. 식료품공장에 나가 생계를 꾸리는 싱글맘과 뚱뚱한 사춘기딸의 갈등. 가쿠타 미쓰요의 차분하면서 부드러운 글은 이 책의 소장가치를 높인다. 정말 두고두고 차근차근 되새기고 싶은 책이다. 이제야 그녀의 색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거 같다. 추천한다